애플와치의 기믹(Gimmick), 그 속에 숨어있는 SCM 철학
글. 이병휘 캘로그 디멘드 플래너
Idea in Brief
애플와치에는 숨겨진 기믹(Gimmick) 하나가 있다. 애플와치 분해과정에서 발견된 숨겨진 포트가 그것이다. 이 포트는 얇은 금속판으로 막혀있으나 그것을 제거하면 새로운 악세사리를 장착할 수 있다. 설계에 포함되고, 양산제품에서도 구현되었으나 정작 애플의 명확한 설명은 없었던 포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혹시 이 숨겨진 포트는 차세대 애플와치와 함께 발매될 악세사리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접점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 숨겨진 포트는 애플의 SCM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공급망을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애플의 이야기를 전한다. |
애플와치가 출시된 지도 약 6개월여가 지나갔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안드로이드 계열 웨어러블 기기와 함께 애플와치 또한 이제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됐다.
물론 애플 제품답게 전용 충전기인 3P 충전 독(Third Party charging dock) 등 관련 악세사리들이 출시되었지만, 그 중 리저브스트랩(Reserve strap) 社의 배터리 내장밴드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IT기업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SCM 프로세스를 가진 애플의 한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애플와치의 출시 이후 여러 매체에서 소개된 재밌는 사실이 있다. 애플와치 분해과정에서 발견된 숨겨진 포트를 활용한 외장 배터리 기능의 밴드는 전용 충전기보다 빠른 충전 속도를 보여준다. 이 숨겨진 포트는 애플제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라이트닝 커넥터로 보이며, 제품 고장 시 진단이나 헬스케어 기능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포트는 애플의 공식 문서나 발표 등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실제로 포트 자체도 얇은 금속판으로 막혀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배터리 내장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금속판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또한 이미 공개된 동영상 등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제거가 가능하다.
설계에 포함되고, 양산제품에서도 구현되었으나 정작 애플의 명확한 설명은 없었던 저 포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혹시 이 숨겨진 포트는 차세대 애플와치와 함께 발매될 악세사리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접점이 되지 않을까? 이미 이전 애플은 아이폰3G 이후 디자인 변경이 없는 모델을 2세대 동안 유지하며 차기 모델에는 프로세스 변경이나 신규 기능만을 추가해온 선례가 있다. 이를 볼 때 이 숨겨진 포트의 존재 의미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수순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애플의 전략은 SCM 프로세스 상에서 적지 않은 장점을 가진다. 당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외관상 개발 비용, 그리고 생산라인 변경상의 비용 절감이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든다는 부분은 수많은 목업(mock-up)과 디자인 검증 기간을 필요로 하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나 인적자원은 제품 개발비용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품 양산 시 필요한 금형제작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만약 전혀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생산한다면 생산 숙련도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애플은 이와 같은 부분을 동일한 디자인을 사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 이미 전 세대 생산 과정에서 쌓인 조립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변경된 부품조차 기존 제품의 위치를 1:1로 대치하는 수준이라면 사실상 조립 난이도 변화는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장점은 생산성이나 조립 라인에 대한 투자비용과는 별도로 현금 유동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대부분의 부품이 공유 가능한 세대교체라고 한다면 세대교체기에 일시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부품 재고 증가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의 부품을 다음세대에 사용할 수 있기에 전체 재고회전율을 하락시키지 않고 차세대 제품 생산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제품의 재고는 높은 비율로 다음세대 생산을 통해 소모되므로, 제품 수명관리 말기에 나타나는 자재 재고 소진을 위한 할인판매나 폐기를 통한 비용 소모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자재의 공급관리 측면에서도 단일 비용의 장기 계약은 공급 업체와 애플 양쪽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일 부품의 장기 제작은 부품 생산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되며, 애플입장에서도 같은 제품의 장기 공급 계약이 단기 계약에 비해 가격적인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제품의 사후 관리를 위한 서비스용 자재의 경우에도 2개 세대가 높은 수준으로 공용 부품을 유지함으로써 전체 보유 수량을 최소화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공간, 비용 절감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모두 SCM상의 장점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점이 많은 전략을 왜 모든 기업이 실행하지 않는 것일까. IT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이다. 출시 6개월만 지나도 경쟁제품 혹은 유사제품이 출시되며, 시장의 트렌드 또한 매우 빠르게 변한다. 위와 같은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앞으로 2년의 시장 및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 한번에 2세대의 제품에 대한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제품 로드맵에 대한 확정계획 또한 필요하다. 경쟁제품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모방 속에서, 구현 가능한 기능을 1세대에서는 묻어두고 기다리는 것은 전체적인 시장에 대한 통찰이 전제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운영진의 프로세스에 대한 깊은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SCM의 최대 목표는 공급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관련 소요 비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소셜커머스나, 아마존과 같이 배송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최소화하는 B2C 서비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 SCM팀의 지상 과제는 재고 최소화를 통한 현금흐름의 극대화와, 공급 유연성 확보를 통한 판매 손실 최소화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관련된 노력은 대부분의 경우 SCM팀 내부적인 노력에 그치며, 전사적 노력이라고 하더라도 ERP 시스템 구축이나 확장에 따른 정보 흐름성(information flow) 향상에 그친다. 애플의 SCM에 대한 노력과 그 실행은 이 부분에서 빛이 난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제품 로드맵을 기반으로, 관련된 비용을 최대한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품의 설계와 양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능조차도 차세대를 위해 보류된다.
기업의 1차적 목표가 이윤추구라고 봤을 때,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을 생각할 수 있을까? 계속된 제조기술의 개선과 새로운 기능의 등장으로 제품의 생산비용 자체를 억제하는 것은 이제 한계까지 왔다. 각지의 생산 공장들은 인건비가 적게 드는 곳으로 이전을 끝마친 지 오래고, 그나마도 관련 비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생산 비용 자체에 대한 절약은 이제 한계치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재고와 비용을 공급망 전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기업의 비용구조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으나,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에서 SCM은 단순 운영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통, SCM의 화두는 단연 배송 전쟁으로 대표되는 라스트마일 경쟁이다. 제조업 SCM은 ERP시스템을 필두로 Integrated Business Planning(IBP = S&OP)의 개선을 통해 공급망의 가시성(Visibility)을 확보하고자 한다. 한 때 유행처럼 불었던 식스시그마처럼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공급망 계획이 필요할 때다. 마치 애플처럼 말이다.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7호(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병휘 SCM칼럼리스트는 생활용품, 전자제품, 식품, 화장품을 다루는 여러 제조·유통업체를 거치면서 SCM, 수요예측을 담당해왔다. 주요 관심사는 SCM프로세스와 정보 가시성(Information Visibility)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눈을 돌려 물류산업에서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한 주제가 오고갔지만 결국 페북에 중독된 평범한 월급쟁이다. (byunghw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