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도전에 직면한 제조업
위기타개의 비법은 ‘공급망’
글.박승범 SCM 칼럼리스트
Idea in Brief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전이 제조업 앞에 놓여졌다. 단순히 기술력을 키워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획력을 가진 혁신기업 또는 유통업체의 선택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그들과 싸워 이기느냐의 문제다. 올해는 이러한 경향이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제조업체는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거나 공존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관리능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래서 공급망 관리는 올해도 할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모두 하락세다. 이웃나라라고 다르랴. 향후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실천하느라 망명과 난민에 관대한 프랑스에서 선량한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테러도 일어났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기정사실이라고만 한다. 올해라고 결코 평안할 것 같지는 않다.
물류와 SCM은 제조업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물류는 제조업의 원자재와 최종 생산물 모두를 원활하게 흐르게 하기위한 필수요소다. SCM은 그러한 원자재와 최종 생산물이 낭비 없이, 무법천지에 휘말리지 않도록 원활히 흘러가도록 한다. 그래서 물류 전문지를 읽는 독자라면 당연히 제조업의 동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은 제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통찰을 가질 수 있는 한 해였다. 그리고 올해는 그러한 통찰이 더욱 더 가슴깊이 다가오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작년 우리의 광복 70주년과 중국 전승 70주년을 맞았다. 반대로 일본은 전쟁 항복 70주년을 맞았다. 분명 좋은 사실인데 이와 반대로 우리 제조업은 세계경제 침체와 함께 힘겨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중국 역시 제조업이 인건비가 더 싼 나라로 출애굽(Exodus)을 떠나기 시작했으며 경제성장 또한 정체되고 있다. 반대로 일본은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제조업의 부활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 제조업의 역량에 대해 스스로 이만큼이나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지 아련하다. 우리는 97년 구제금융, 2008년 금융위기 모두 슬기롭게 극복했다.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져도 우리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거나 “애플, 구글은 저만큼이나 앞서가고 있어요”라는 언론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보도에 신경 쓰기에 당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마데인차이나’, ‘저질 불량품’ 평가를 받는 중국제품에 비해 무척이나 훌륭해 보였고, 우리의 제조 경쟁력은 애플과 구글의 인정을 폭넓게 받아왔다.
그런데 작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대륙의 실수’를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중국의 혁신기업(아직 지적재산권 개념은 없지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애플과 구글은 이미 우리와는 너무도 먼 곳을 앞서가고 있다. 특히 애플, 구글은 자체 생산시설 없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 애플의 스마트폰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해 보인다. 구글의 스마트폰은 성능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다. 상품기획은 자체적으로 하지만, 제조는 능력 있는 제조업체에 맡긴다. 아이폰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폭스콘이 만들고, 넥서스5X는 LG전자가, 넥서스6P는 화웨이가, 넥서스9 태블릿은 HTC가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1~2인 가구가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편의점과 온라인 쇼핑몰, 소셜커머스의 매출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통적인 대형마트와 홈쇼핑은 물론 편의점과 온라인 쇼핑몰, 소셜커머스까지 PB(Private Brand,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상품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편의점 PB’라 검색하면 2014년과 2015년을 기점으로 편의점의 PB상품 매출이 급격히 늘어났고, 소셜커머스에서는 PB상품을 론칭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편의점의 유명한 PB상품들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GS25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은 이제 국민라면의 대명사 ‘N사의 S라면’이 아닌 PB상품인 ‘오모리 김치찌개라면’이다. 해당 제품은 지난해 12월 24일 출시 이후 9개월간 라면매출 1위를 지켰다. CU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낵은 국민과자 ‘N사의 S깡’이 아닌 ‘콘소메맛 팝콘’이라고 하지 않던가. 콘소메맛 팝콘은 2015년 9월말 기준 4년 연속 CU내 스낵 판매 1위다. 이제 PB상품은 다른 나라로 수출되기까지 한다. PB상품은 누가 만드는가? 편의점은 기획만 한다. 일반 제조업체가 생산한다.
요컨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전이 제조업 앞에 놓여졌다. 단순히 기술력을 키워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획력을 가진 혁신기업 또는 유통업체의 선택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그들과 싸워 이길만한 수준의 마케팅 예산을 집행하여 힘겨운 경쟁을 지속해 나갈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제조업 스스로가 혁신기업이 되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무척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하루라도 빨리 내놓을 것이냐의 싸움이다.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공급망 관리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혁신기업 또는 유통업체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결품없는 신속한 공급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높은 재고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혁신기업이나 유통업체는 재고에 민감하다. 재고부담을 철저히 제조업체로 넘긴다. 연말이 되니까 우리나라 기업들의 재고 증가가 심상치 않다고 하는데 이것은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그만큼 우리 수요예측 및 재고관리 수준의 열악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공급망 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조업체의 전체적인 재고수준이 올라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혁신기업, 혹은 유통기업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도 공급망 관리 능력은 필요하다. 그들보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빨리 팔고 재고를 소진해야 한다. 제조업 스스로가 혁신기업이 되어 누구보다 빨리 세상이 깜짝 놀랄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려면 당연히 제조업체 내의 모든 부서들이 최대한 개발기간과 절차를 준수하고 협력해야 한다.
올해은 이러한 경향이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제조업체는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거나 공존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관리능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이다. 이제 제조업 3.0에 스마트공장 이야기까지 나온다. 제조업 3.0과 스마트공장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사물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제품과 서비스의 디지털화, 그리고 사내외 각 부문 간의 네트워킹이 그것이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공급망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제품과 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공급망 전체의 가시성을 높인다. 사내외 각 부문 간의 네트워킹은 그 자체가 공급망 관리다.
이래서 공급망 관리는 올해도 할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6호(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