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버 인터넷 물류논객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별로 양호하지 못한 환경에서 낮은 급여를 받으며 고생하는 이들이 만든 산출물을 다음 공급망 참여자가 소비하거나 부가가치를 더하여 재생산하는 구조가 흔했다. 인류 역사 초창기 탄생한 위대한 문명을 보면 노예들의 노동을 기초로 한 경제 발달과 이에 따른 문화 예술 발전의 순환을 가졌던 곳이 제법 있다. 대표적인 문명이 그리스와 로마였다.
이것은 공급망의 숙명이다. 공급망 안에서 한 참가자가 만든 재화나 서비스, 또는 정보에 대하여 그 다음 참가자는 어떻게든 거기에 부가가치를 덧씌우기 마련이다. 최초 납품업자의 가격 등록 담당자가 등록한 납품 가격에 따라 구매자는 매입을 하며, 그 매입 정보를 기초로 하여 구매자는 거래선에 매출 정보를 생성한다. 선사가 등록한 ETA(Estimated Time of Arrival: 도착 예정시간)를 포워더가 받아서 화주에게 건네주면, 화주는 그 ETA를 기준으로 화물의 통관을 하건, 반출을 하건, 거래선에 직송을 하건 뭐든 한다. 실물의 입고를 잡는 물류센터 작업자가 스캐너로 실물의 바코드를 찍어 줘야 물류센터의 입고실적이 되고, 화주의 재고 실적이 되며, 곧 거래선의 가용재고 정보가 된다.
비교가 좀 이상할지는 모르겠지만, 공급망 안에서 참가자들 간 공유되는 정보를 최초로 등록하는 사람이 공급망 안에서 갖는 역할은 인류 역사 초기 노예들이 그들의 속한 문명 속에서 가진 역할과 유사하다. 따지고 보면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인정은 못 받고 일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되고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공급망 안에서 원천 정보를 등록하는 등록자가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해 버리면 그 여파는 자신만이 아니라 그 뒷단계의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친다. 그들이 생산한 정보, 또는 재화나 서비스는 공급망을 흘러 흘러 더 상위의 공급망 참가자가 소비하기 때문이다. 즉 정보, 재화, 서비스 등 그 무엇이건 간에 그들의 노동은 공급망 전체의 정보, 재화, 서비스가 갖는 가치의 근간을 이룬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자. 대부분 기업에서 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어느 정도 직급이 있고, 경험도 있으며, 어느 정도 대우도 받는 관리자겠지만, 실제 정보를 등록하는 사람은 그 관리자보다는 직급이 낮고, 경험이 일천하며, 비교적 대우가 낮은 경우가 많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경험이 일천한 젊은 초심자가 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정보 등록 업무를 많이 시킨다. 정보 등록은 초심자에게 줄 수 있는 괜찮은 업무다. 하지만 그 정보는 당연히 나중에 공급망 전체에 흐르게 될 것이다. 공급망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공급망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업무를 초심자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공급망은 딜레마에 빠진다. 공급망에서 흐를 최초의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최초의 정보를 등록할 등록자에 대한 관심을 얼마나 가져 보았는가? 혹시 아주 단순하고 별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다고 무시하고 멸시하며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가.
회사 전체적으로 매출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가장 공헌도 높은 거래선 중 하나를 위한 주문을 입력하는 주문 담당자가 박봉에 비정규직이다 보니 이직이 너무 잦아서 주문관리가 안 된다는 모 고객사의 마케팅 담당자 분의 하소연을 필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만약 경험 많은 직원이라면 아예 주문을 보낸 담당자가 한 실수까지도 쉽게 알아낼 것을,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 매번 주문 낼 때마다 고생할 수밖에 없다. 매출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공험을 가진 거래선이라면 주문을 입력하는 사람을 계속 이직이 많은 박봉에 비정규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공급망 전체를 위해 바람직할까? 주문 입력자의 입력 경험이 누적되지 못하면 결국 그 여파는 그 뒤의 피킹, 포장, 적재, 만약 수출이라면 수출 신고와 통관서류 작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담당자들의 업무에 병목을 발생시킬 수 있다.
만약 거래선을 직접 상대하는 영업이나 마케팅이라면 절대 경험이 일천한 직원이 매출이나 수익성 비중이 높은 거래선을 담당하게는 안할 것이다. 실제많은 기업에서 중요한 거래선에 대해서는 비교적 경험 많은 관리자급 직원들이 직접 영업이나 업무 협의를 주도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그렇게 애써 관리한 거래선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주문을 접수하고 물건과 정보를 건넬 사람들은? 진짜 공급망을 합리화하고 싶다면 사소한 실수로 공급망 전체에 타격을 안겨줄 수 있는 정보일수록 되도록 경험 있는 등록자 자원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우수한 등록자 자원을 유지하지 못하겠다면 그 등록자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키고 충분한 현장 적응 기간을 주며, 정확한 관리에 대하여 아주 작게나마 보상을 해 주는것이 맞다. 모 국가에서 주문 등록 부서의 부서장을 지낸 필자의 지인 분이 처음 부서장이 되었을 때 새로 뽑은 직원들이 너무 일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한 달의 기간을 주고 그 동안 실수 안 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했더니 그 달의 실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월급이나 포상은 더 주지 못할지언정 그가 가진 어려움이 무엇인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멘토를 적극 활용하며, 회사가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당신이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정보가 틀렸을 때 그것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주지시키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원래 기업의 핵심역량이라는 것은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변질되면 안 되는 것이다. 누가 그 일을 하건, 그 사람이 틀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프로세스를 가지고 가야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고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급하게 업무에 투입했다가 엄청난 사고를 저지르는 것을 방치하고, 뒤늦게 그것을 수습하느라 애쓰는 것보다는 낫다.
원천 데이터라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게 다룰 가치가 충분하다. 요컨대, 공급망에서 재화나 서비스의 흐름만큼이나 그 재화나 서비스의 흐름에 상응하는 정보를 등록하는 등록자 또한 중요하다. 그 한사람의 실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작업을 할 지 생각해 보라.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긴장 푸는 사이 공급망의 응답속도는 느려진다. 한때 파라오의 노예들이 열심히 중노동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던 피라미드. 그러나 그들의 병가나 휴가, 급여, 산재치료 등이 확실하게 보장되었고, 오히려 나일강의 범람으로 일거리가 없어진 농부들을 구제하는 국책사업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 건설공사 노동을 희망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트레스 없이 좋은 동기부여를 받은 사람들이 만든 피라미드였기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그 웅장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