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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체국 배송사원의 죽음…눈물의 택배별곡

by 콘텐츠본부

2011년 03월 05일

한 우체국 배송사원의 죽음…눈물의 택배별곡
시간 쫓기며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다 실족사 추정
입에 장갑 물고, 양손엔 메모지와 볼펜 쥔 채 쓰러져
민간택배사 비정규직도 닮은꼴…법적보호 '절실'


지난 3일 오전 7시48분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아파트 16층과 17층 사이 비상계단에서 한 우체국 택배직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김영길(32) 씨는 남인천우체국 관할 배송사원(비정규직)이었다. 발견 당시 김씨는 머리가 함몰되는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입에는 오른쪽 장갑을 물고 있었고, 시신 옆에는 메모지와 볼펜이 떨어져 있었다. 인천남동경찰서 관계자는 “택배 상자 3개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김씨가 2일 오후 2시43분 16층에서 내리는 모습을 끝으로 폐쇄회로TV(CCTV)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을 마친 김씨가 1층까지 걸어 내려가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홀어머니의 점심을 챙기는 효자였다. 이 때문에 그의 사고소식은 주변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또 내년에 정규직(집배원) 시험을 준비 중일 만큼 모범적인 직원이었던 것으로 회사동료들은 전했다.


김 씨의 사고 뒤에는 '죽음의 택배 근로환경'이 숨겨져 있다. 김씨가 근무하던 남인천우체국에는 30여명의 배송사원이 있지만 하루 배달하는 소포량만 8000~1만2000개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김씨 같은 집배원들도 택배 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 최근에는 김씨와 함께 구월동을 담당하던 택배사원 1명이 그만둬 업무 부담이 커졌다.


그렇다고 보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김씨는 비정규직인 ‘상시위탁 집배원’이었다.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지만 월 급여는 정규직 집배원의 88% 수준인 월 199만원(수당 포함)이다. 그래서 김씨는 입버릇처럼 “경력 3년을 채우는 내년에는 정규직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말해왔다.


김씨가 계단을 이용한 것은 우편물을 빨리 배달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100m 달리듯 아파트 계단을 뛰어오르는 게 택배사원들의 보편적인 일상이다. 엘리베이터는 탈 엄두도 내질 못한다. 전층을 엘리베이터로 이용했다간 주민들의 쌀쌀한 눈빛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우체국택배 한 관계자는 “택배를 빨리 배달하지 않으면 항의가 들어오기 일쑤다. 집배원 한 명이 하루 평균 배달하는 우편물량이 200통 이상이다. 그렇다보니 매일 아파트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전력질주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게 운송업 종사자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비정규직이라 공무원연금법 적용도 받질 못하고 산재 처리만 된다. 비정규직의 죽음이 더 서글픈 이유다.


주위를 둘러보자. 우체국택배와 닮은꼴인 민간택배업체에도 숨진 김 씨와 비슷한 근로환경에 처해 있는 비정규직(불법자가용 화물사업자) 택배종사자들이 전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기업과 민간기업 소속이라는 차이가 있을뿐이다.


이들 모두 김 씨와 똑같이 목숨 건 배달전쟁 속에서 일하고 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물류센터 분류작업을 시작으로 밤 8~9시까지 관할지역을 100m 달리듯 뛰어다닌다.


한손에는 차량핸들이, 또 다른 한손에는 김밥 한 줄이… 휴대폰은 아예 귀에 꽂고 하루 종일 통화 중이다. 이런 속사정을 알리 없는 소비자들은 "언제 오냐, 몇시까지 와달라, 집에 없으니 다음에 방문해달라"며 배송기사들을 하루에도 수십번 채근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택배업계에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한 택배영업소장은 이런 이유와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로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더욱이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택배기사들 과반수이상이 불법자가용과 특수고용직 형태로 일을 하다 사고가 발생해 산재보험 등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푸대접 속에서 택배기사들이 박스 한 건당 받아가는 수익(수수료)은 고작 500~800원 수준이다. 기름값, 차량 할부값 등 비용을 빼고 나면 하루일당은 6~7만원 정도다.


택배업계 전체가 죽음의 계곡을 운행 중이다. 최근 기름값 인상에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고, 하루 일당 채우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한 건의 배송이라도 더 뛰어야 한 푼이라도 더 챙긴다는 중압감에 위험천만한 배달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택배가 국민생활편의형 서비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업계 종사자들의 인권을 보호해 줄만한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준비돼 있지 않다.


세월이 바뀌어 다양화된 화물운송서비스 시장이 생성되고 있는 가운데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택배 등 운송업계를 바라보는 정부기관의 뒷짐이 업계 종사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 고 김영길 씨(남인천우체국 택배사원)의 명복을 빕니다.

김철민 기자
logis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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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우체국택배 집배원 고 김영길 씨가 실족사가 아닌 타살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 기사의 작성시점은 3월4일로 경찰의 타살 가능성에 대한 브리핑은 3월5일에 있었습니다. 기사내용의 이해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인천 집배원 타살 가능성”…경찰 수사 나서


집배원 김모(33) 씨가 실족사한 것이 아니라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김 씨가 둔기로 머리를 여러차례 맞아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김 씨가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던 아파트 현관 입구에 달린 CCTV 여러 대의 화면을 분석한 결과, 김 씨가 숨진 2일 낮 마스크를 쓴 신원불상의 남자와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남성은 김 씨와 동시에 CCTV 화면에 잡히기도 했고 몇 분 간격을 두고 같은 아파트에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도 확인됐다.


경찰은 김 씨 머리 부분에 상처가 여러 군데 있는 점으로 미뤄 타살 가능성에 대해 수사해왔으며 부검 결과와 CCTV 자료 등을 토대로 화면에 잡힌 남성이 김 씨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콘텐츠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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