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20년 전 물류 시스템이 스마트한 이유, 뭣이 중헌디?

by 설창민

2016년 10월 19일

ERP, POP, MES... 20년 전 시스템이 스마트할까
우리들이 자초한 현실, 기술 적용의 민낯
모든 것이 연결된 공급망, 스마트 공장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국내 민관합동 스마트공장 추진단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상의 스마트공장 확산이 추진되고 몇몇 성과를 달성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성과를 달성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지 않다. RFID, NFC, 사물인터넷과 같은 최신 기술이 아닌 이미 20년 전 대두된 ERP, POP, MES와 같은 유행이 지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을 적용하려면 일단 사람간의 의사소통이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그것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시도는 시스템 데이터를 통한 공급망 관리의 첫 단추를 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스마트공장이 스마트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필자는 지난 7월부터 ‘SCM이여, 다시 한 번(Play It Again, SCM)’이라는 대주제를 갖고 연재하고 있다. 첫 번째 글에서 필자는 스마트공장은 그 자체가 SCM이고, 이제 성숙기에 들어선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민관합동 스마트공장 추진단을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공장 확산이 추진되고 있고, 실제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우연치 않게 추진단에서 공개한 몇몇 사례들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사례들은 스마트공장 추진단 블로그를 방문하면 별다른 제약 없이 볼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셔도 좋다.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공장(?)
 
찬찬히 다 읽어보고 나서 필자가 놀란 것은 생각보다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들이 스마트공장이라고 도입한 시스템은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생산공정관리(POP: Point of Production), 생산관리(MES: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등 이미 IT업계에서는 어떻게 보면 유행이 많이 지난 시스템들이다.
 
ERP 같은 경우는 필자가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는 마이클 해머의 리엔지니어링 확산과 관계가 깊은 시스템이다. 무려 20년 전 이야기다. 스마트공장은 이른바 ICT기술에 기반한다. 즉,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간 의사소통을 시스템간 직접적 의사소통이 대체하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이런 시스템에는 으레 RFID, 스마트폰, NFC, 사물인터넷과 같은 화려한 기술이 사용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 사례를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들의 민낯
 
이유는 간단했다. 그 화려한 기술들을 적용하려면 일단 사람간의 의사소통이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조차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새천년이 밝은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IT 시스템 활용 수준의 민낯이다. 그 중소기업에 발주를 하는 기업의 발주관리 수준의 민낯이기도 하다. 동시에 매일 비즈니스한다고 바쁘게 사는 우리 모두가 IT 시스템에 대해 가진 생각의 민낯이다.
 
중소기업은 직원들이 자주 이직하느라 숙련도가 떨어져서 매일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것도 버거운 나머지 IT 시스템 도입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으니 위험한 투자를 안 한다. 투자를 안 하는 사이 중소기업에 발주를 하는 기업은 단가인하, 무리한 납기 등을 반복하면서 투자여유를 없앤다. 중소기업은 그것을 맞춰 주느라 더욱 더 프로세스 혁신을 등한시하고 그날그날의 업무가 무사히 끝나는 것만 바라게 된다. 업무가 그렇게 흘러가면 직원들은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못 느낀다. 발전하는 것을 못 느끼니 퇴사한다. 새로운 직원을 뽑으면 또 그날그날의 업무를 무사히 넘기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역량이 떨어져 있는데 발주를 하는 그 기업은 역량이 떨어지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높여줄 생각은 못하고 너나할 것 없이 자기 발주만 채워 달라고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으로 채근만 한다.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으로 채근을 당하니 더더욱 시스템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악순환이다.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중소기업은 발주 받은대로 싼 값에 제대로 납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을 통해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발주와 발주 취소를 반복한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규칙대로, 합의한 대로 발주관리를 하면 당장 자신의 매장에 결품이 생기고,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상급자, 또는 현장 관리자로부터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역대급 육두문자를 뇌 깊숙한 곳에 새기게 될 운명을 안고 간다. 역대급 육두문자를 날리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지들이 뭔디, 니들은 뭔디? 뭣이 중헌디(물론, 독자들은 뭣이 중한지 다 아실 것이라 믿는다)?”
 
공급망 관리의 시대다. 고객은 변덕스럽고, 시장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경쟁자는 많고, 제조 경쟁력은 평준화되었다. 육두문자 날려가면서 이메일, 메신저, 전화로 발주하는 상황은 그 때의 위기를 모면하게는 해 줄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그 위기상황은 우리가 비즈니스라는 것을 하는 한 영원하다. 어쩌면 미래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공급망 관리의 시대니까 말이다. 더 심해질 것 같으면 관리를 해야 하는데, 관리는커녕 일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만 높아진다.
 
즉, 중소기업의 IT시스템 활용 수준이 떨어진 것은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이들이 자초한 일이다. 중소기업에 발주를 할 때 IT시스템을 활용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가시성을 확보해 가면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중소기업이 무슨 IT시스템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 온 모든 이들의 공동작품이다.
 
스마트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보면, 지금 뒤늦게나마 스마트공장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가지고 ERP, MES, POP 등 기본적인 생산관리 IT시스템을 도입하는 중소기업들은 대단한 개척자들이다. 실제 사례들을 잘 읽어보면, IT시스템 도입이 현재의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것이고, 그것이 회사의 발전, 글로벌화,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최고경영자, 담당임원,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내 담당자들의 확신이 있었다.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사용자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가장 고민이 되는 재원 마련과 전문 인력은 스마트공장 추진단에서 지원했으니 처음부터 문제없었다. 그저 중소기업 스스로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사례기업 중에는 완성차 부품회사들이 제법 많았다는 것이다. 완성차 부품회사의 업무 특성을 생각해 보면, 모든 부품에 대한 이력 관리가 필요하다. 부품의 이력 관리는 부품의 로트번호나 제조일련번호를 통해 관리된다. 수기로는 절대 관리할 수 없는, 아니, 수기로 관리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그런 일이다. 그리고 부품 가용성 확보에 대한 니즈가 매우 강하다. 완성차 생산라인은 잠시만 멈춰도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에 납품업체는 늘 충분한 재고 확보를 요구받는다. 재고를 충분히 가져간다는 것은 현금흐름의 악화를 뜻한다.
 
어느 한 부분에서 시스템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고와 부실이 숨어 버리면, 그것이 수면 위로 들어났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완성차 업체라고 해서 이메일, 메신저, 유선으로 발주하고 발주 취소하고, 긴급주문을 주고 납기를 채근하는 행위를 앞으로 안 할 것 같지는 않다. 발주측이 그런 행위를 계속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필요했었다는 뜻이다.
 
스마트공장은 아주 단순하게 보면 하나의 IT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입기업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특히 IT 시스템을 통해 관리를 수행하고, 수기 작업을 스스로 없애나감으로써 사내 가시성을 높이려는 생각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의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확신을 가져야 한다.
 
공급망 관리의 시대는 모든 기업이 사실상 연결되어 있다. 특정 납품업체의 재고정보 가시성 소멸은, 결국 발주하는 기업의 생산라인을 세워 버리고, 매장의 재고를 비운다. 이러한 일들을 IT시스템 기반의 가시성 공유를 통해서 줄여 나가면, 사람은 경험의 동물이기 때문에 문제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시스템 관리로 돌아간다. 이메일, 메신저, 유선으로 채근할 일이 줄어든다. 시스템 데이터를 믿으니까.
 
물론 늘 그렇듯이 공개되는 사례는 미화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울퉁불퉁했던 호박에 줄그으면 수박처럼 안 보인다. 그나마 동그란 호박이어야 줄그어서 수박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아무튼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스마트공장을 성공시킨 동그란 호박 또는 수박 같은 사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한국 제조업에 희망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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