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난데없는 물류독립, 글로벌 소싱 시대에 국산품 애용이라고?

by 설창민

2016년 09월 22일

글로벌 소싱 시대에 국산품 애용 구호가 가당한가
완제품 수출-핵심자재 수입의 한국, 국산품 애용이 공급망을 살린다
 

Idea in Brief

 

글로벌 소싱의 시대라고 한다. 글로벌 소싱을 통해 구매선 다변화를 하고 안정적인 구매를 할 수 있다. 구매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소싱의 단점 또한 명확하다. 공급망 관점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일단 운송 리드타임이 압도적으로 길어진다. 그것도 모자라서 국제운송은 파업이나 체선 등으로 예정된 운송 리드타임을 초과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특허 등 지적재산권과 분쟁광물, 전략물자, FTA, 원산지 관리, 관세 환급 등 관련된 업무가 훨씬 늘어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산품 애용’은 공급망 관리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글로벌 소싱의 시대에 모든 것들을 국산화할 수는 없을 것이고, 품질이나 단가, 납품수량 측면에서 한계도 있겠다. 그러나 다소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국산품 애용에 대한 노력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시장 변동에 대한 공급 대응력은 어느 순간 높아져 있을 것이다. 국산품 애용. 공급망 관리에선 아직 필요하다.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기술의 진보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변화의 속도 때문일까. 많은 것들이 복고라는 이름으로, 혹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대다. 가끔씩은 시대의 패러다임마저도 옳고 그름을 떠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한다.
 
우리의 기억 속 과거의 향수 중 하나는 ‘국산품 애용’이다. 40대 이상이라면 외국산 학용품을 학교에 가지고 오면 선생님께 혼나던 시절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국산 백팩에 대한 반감으로 국산 백팩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미국산 콜라가 싫어서 콜라도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노량진 고시생들의 손에는 일본제 볼펜이 들려 있다. IMF 당시 인기를 끌었던 국산 백팩의 인기는 시들해진 반면, 당시에도 인기를 끌었던 미국산 백팩은 아직도 잘 팔린다. 탄산음료 시장의 축소로 미국산 콜라만 눈에 띈다. 과거에 비해 외국산 제품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낮아졌고,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이는 과거 ‘국산품 애용’이라는 구호 자체가 “비록 국산품의 질은 다소 낮을지언정 애국심으로라도 구매해 달라”는 호소에 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제 ‘국산품 애용’은 시대에 무척 뒤떨어진 패러다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급망 관리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국산품 애용은 시대에 뒤떨어진 패러다임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점이 된다. 한국은 완제품을 수출하지만, 그 수출을 위한 자재와 부품,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자재와 부품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앞에서 이익을 봐도 뒤로 손해를 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실제 한국의 주요 수출품들을 보라. 대부분 완제품들이고, 어쩌다 부품이나 중간재도 있지만, 이 부품이나 중간재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자재, 부품, 기계설비는 대부분 수입한다. 혹자는 “글로벌 소싱의 시대에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글로벌 소싱의 개념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글로벌 소싱은 신흥국가의 경제 성장, 원거리 교통의 발달, 제조기술의 상향 평준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무역장벽 완화 등에 따라 해외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조달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이다. 한 마디로 자국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더 싸게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글로벌 소싱은 다국적 기업들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고, 실제 지금도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글로벌 소싱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소싱은 그 장단점이 분명하다. 장점은? 싸다. 구매선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구매를 할 수 있다. 구매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면? 공급망 관점에서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 일단 운송 리드타임이 압도적으로 길어진다. 그것도 모자라서 국제운송은 파업이나 체선 등으로 예정된 운송 리드타임을 초과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특허 등 지적재산권과 분쟁광물, 전략물자, FTA, 원산지 관리, 관세 환급 등 관련된 업무가 훨씬 늘어난다. 품질관리, 사양 변경, 납기 변경, 인수조건 변경 등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어지는 점도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80년대처럼 3저 현상(저유가, 저환율, 저금리)을 누리면서 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면 글로벌 소싱은 우리에게 기회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첨단 제품을 수출한다. 유행이 쉽게 바뀌는 첨단 제품을 수출하는데 핵심부품을 글로벌 소싱하면,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매우 힘들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왜 스마트폰의 AP칩(Application Processor)을 자체 개발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알 것이다. 특히 이러한 핵심적인 부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보통 세계 최고(Global Top) 수준의 기업들이 많아서, 거래선 못지않게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을 내놓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몇 주 전에는 반드시 발주를 해야 하고(구매자는 되도록 발주를 늦게 내고 싶어한다. 시장이 불확실하고, 재고 부담을 안기 싫으니까), 몇 주 전부터는 발주를 취소할 수 없고 무조건 인수를 해가라고 한다거나(구매자는 되도록 발주 취소를 늦게까지 하고 싶어한다. 인수를 할 필요가 없을 때는 인수하지 말아야 쓸데없는 낭비를 줄인다), 몇 주 전에는 반드시 단가에 합의를 해야 한다거나(구매자는 되도록 단가를 나중에 정하고 싶어한다. 협상이 길수록 납품업체에게는 불리해진다)와 같은 사항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들로 거래처를 옭아매는 것을 아주 잘하는 업체들이 바로 기술력으로 무장한 일본의 부품업체들이다. 일본에서 팔리는 SCM 서적들을 읽어 보면, 기업간 거래로 대량의 납품을 해야하는 부품 또는 자재업체들의 경우, 발주를 언제까지 받고, 취소는 언제까지 가능하며, 언제 이후는 인수금액을 어떻게 부담할 지 등을 거래처와 명확하게 할 것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면 잘 따라하는 것이 일본의 습성이다. 너무 잘해서 탈이다.
 
중국 제조업이 글로벌 소싱을 계기로 성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국 현지 공장들이 글로벌 소싱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음으로써 막강한 공급망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애플이 폭스콘을 통해 아이폰을 생산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폭스콘 공장 주변에 있는 막강한 부품 협력업체들 때문이다.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장상황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노버가 중국 동부에 있던 공장을 정리하고 서부의 쳉두(성도)로 공장을 이전할 때 수많은 대만의 협력업체가 함께 이전했기 때문에 레노버는 아직도 PC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실제 주변에서 부품이나 자재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서 쓰는 공장과 주변의 기업들로부터 구매해서 쓰는 공장의 시장변동 대응력을 비교해 보자면 확실히 후자 쪽이 더 잘 대응한다. 전자는 시장 변동을 흡수해 주기 위해서 매 순간 시장 변동을 체크해서 부서간 철저하게 공유하고, 대책 회의를 갖고, 미리 충분한 안전재고를 확보하는 등의 관리를 계속해 나가야 하고, 그렇게 관리함에 불구하고 변동에 대응하기 힘겹지만, 후자의 경우는 시장 변동을 최후의 순간까지 흡수해 줄 수 있으므로 부담이 적어진다.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국산품 애용은 공급망 관리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글로벌 소싱의 시대에 모든 것들을 국산화할 수는 없을 것이고, 품질이나 단가, 납품수량 측면에서 한계도 있겠지만, 그런 노력들 하나하나가 모이면 시장 변동에 대한 공급 대응력은 어느 순간 높아져 있을 것이다.
 
국산품 애용, 아직 공급망 관리에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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