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한국형 회계기준
건설·조선 등 수주산업은 왜 분식회계 단골업종이 됐을까
분식회계 문제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서 나온다
글. 이재홍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 회계사
Idea in Brief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당사자인 회사와 주주인 산업은행,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회계법인이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만약 분식회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 관련자들은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회계정보는 주주, 채권자, 국세청 등 다수의 정보이용자들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분식회계는 정보이용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이해 관계자의 유무형의 손실을 초래하는 범죄 행위다. 특히 분식회계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 있는데 건설과 조선업 등 수주산업과 관련된 업종이다. 그렇다면 유독 국내 수주산업에서 분식회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
회계 투명성 ‘꼴찌’의 민낯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5년 국가별 회계·감사 투명성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151개 조사국 가운데 72위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규모가 우리나라의 9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짐바브웨가 40위, 아시아지역 최빈국 부탄이 60위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창피한 점수다. 올 들어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6년 국가경쟁력 분석’ 중 한국은 회계·감사 적절성 부문에서 전체 61개국 중 61위로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다.
여러 조사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회계 투명도가 매우 낮은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의 회계 투명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의 신뢰도가 낮다는 말과 같다. 한국회계기준원이 낮은 회계 투명성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막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하여 공표한 기준이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이다. 이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2011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규모와 기업공개 여부에 따라 재무회계기준을 따로 정해놓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회계 투명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형 회계기준이 뭐길래
회계 정보 이용자들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의 재무상태나 경영성과를 외부에 보고하는 재무회계에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준을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GAAP, 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재무제표의 신뢰성, 이해가능성 및 기업간 비교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재무회계기준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과 ‘일반기업회계기준’, ‘중소기업회계기준’까지 모두 3가지로, 각각의 적용 대상기업이 다르다. 먼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외부감사 대상법인 중 상장기업, 상장기업의 자회사 또는 IPO(기업공개, 주식 상장)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일반기업회계기준’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외부감사 대상 법인과 코넥스 상장법인에 적용되는데, K-IFRS와 구분하여 실무에서는 K-GAAP로 표현하기도 한다. 외부 감사 대상법인은 다음과 같다.
외부감사 대상 법인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제2조, 동법시행령 제2조①]
1. 직전 사업연도말의 자산총액(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회사가 분할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여 설립한 경우 설립 시점의 자산총액)이 120억 원 이상인 주식회사
2. 직전 사업연도 말의 부채총액이 70억 원 이상 또는 종업원수가 300명 이상이고, 자산총액이 70억 원 이상인 주식회사(그 주식회사가 분할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여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경우에는 설립 시의 부채총액이 70억 원 이상 또는 종업원수가 300명 이상이고, 자산총액이 70억 원 이상인 주식회사를 말한다)
3.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권상장법인(기존의 주권상장법인 또는 코스닥 상장법인)
4. 당해 사업연도 또는 다음 사업연도 중에 주권상장법인이 되고자 하는 법인(상장 예정법인으로 주권상장법인과 합병이나 주식의 포괄적 교환 등 증권선물위원회가 정하는 방법을 통하여 주권상장법인이 되려고 하거나 해당 주식회사의 주권이 상장되는 효과가 있게 하려는 경우의 해당 주식회사를 포함) |
마지막으로 ‘중소기업회계기준’은 외부감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법인을 위한 기준이다. 각 회계기준별 특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다.
①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
국제회계기준(IFRS)은 영국 런던에 소재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에서 제정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회계분야는 전통적으로 세계경제의 양대축인 유럽과 미국이 양분하고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엔론 등의 회계 부정사태와 국제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2008년 리먼 사태로 인하여 회계부문에서 미국이 많은 공격을 받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유럽 국가가 중심이 된 국제회계기준이 공식 회계기준으로 인정받게 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편, 미국은 국제회계기준 대신 자체 회계기준인 US GAAP를 적용하고 있으며, 최근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미국의 회계기준(US GAAP)이 적용된 수정된 기준으로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2010년 이후 유럽경제의 하락과 미국경제의 부활로 인하여 미국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서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국제회계기준(K-IFRS)의 주재무제표는 연결재무제표이며, 업종의 구분없이 제정된 기준인 관계로 일부 기준은 업종에 따라 적용하는데 유용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예-금융상품 회계 처리 기준은 금융기관에는 적합하나 제조업에 적용하기에는 목적적합성과 유용성이 떨어진다.)
② 일반기업 회계기준
일반기업회계기준은 외부감사대상법인 및 코넥스 상장법인이 적용해야 하는 회계기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로 2000년도에 기업회계기준 제정 권한이 금융감독원에서 민간부분인 한국회계연구원(현, 한국회계기준원)으로 이관되었다. 이때 처음 발표된 기준서가 2001년 기업회계기준서 1호인 ‘회계변경과 오류 수정’이다. 이후 ‘일반기업회계기준’이 공표되기 전인 2009년까지 기업회계기준서 25호 ‘연결재무제표’를 마지막으로 기업회계기준서의 발표가 중단되었다.
2011년부터는 ‘일반기업회계기준’이 비상장 외부감사 대상법인에서 적용해야 할 회계기준으로 새로 도입되었다. 새로 발표된 일반기업회계기준은 ‘부의영업권(염가매수차익) 일시 환입’ 등 기존의 기업회계기준서와 몇 가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큰 변화는 아니었다. 2001년부터 발행되었던 기업회계기준서들이 국제회계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일반기업회계기준도 국제회계기준을 대폭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기업회계기준과 국제회계기준과의 차이도 크지 않다. 결론적으로 일반기업회계기준은 대부분 국제회계기준과 비슷하나, 국내 비상장기업의 현실에 맞게 몇 개의 부분을 수정하여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편, 코넥스 상장기업도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여야 하는데, 기업 외형의 크기와 관계없이 코넥스 상장이 가능해진만큼 규모가 아주 작은 회사의 경우 일반기업회계기준에 따른 회계처리에 부담이 있겠지만, 외부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일반기업회계기준 적용을 강제하게 되었다.
③ 중소기업 회계기준
중소기업회계기준은 일반기업회계기준이 분량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비외감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게 제정한 회계기준이다. 실무적으로 비외감기업은 세법에 따라 회계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중소기업회계기준에서도 세법에 대한 처리를 대폭 수용하고 있다. 일반기업회계기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금흐름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며, 자본변동표와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결손금처리계산서) 중 한 가지만 작성하면 된다.
중소기업회계기준의 적용을 상법에서 강제하고는 있지만, 잘 적용했는지 검토하는 곳이 없고, 위반해도 벌칙을 줄 기관도 없다. 그래서 여전히 실무적으로는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세법에 따라 회계처리하고 있다
성장 단계별로 적용되는 회계기준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단계부터 주권상장법인이 되기까지 각 단계별로 적용하여야 할 회계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는 셈이다. 물론 중소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기업도 K-IFRS를 적용할 수는 있으나 적용에 따른 실익은 없다. 이젠 위의 설명들은 잊어버리고 아래 그림만 이해하도록 하자.
국내 기업이 선호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
K-IFRS의 홍보가 잘 된 덕에 우리나라 재무회계기준은 K-IFRS으로 통일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대부분 기업은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외부감사 대상회사 현황<표1>을 살펴보면 K-IFRS를 적용하는 회사의 비율이 약 10%,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는 회사 90%를 차지하고 있다. 외부감사 대상 회사들의 대부분이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회계부분에서 취업준비를 하거나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이직대상 회사가 어떤 회계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파악하여 적용하고 있는 회계기준에 맞게 학습할 필요가 있다.
수주산업의 회계 투명성이 낮은 이유
회계나 주식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식회계의 단골 업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건설업이나 조선업 등 수주산업과 관련된 업종이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고, 작년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분식회계 의혹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이유는 건설업이나 조선업, 플랜트 산업에 적용되는 특수한 회계처리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공사의 진척도에 따라서 수익을 인식하는 방법인데 회계적으로는 ‘진행기준’이라고 부른다. 진행기준은 회계의 대원칙 중 하나인 ‘수익비용 대응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회계처리방법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우수한 회계기준이지만 다른 업종보다 이 기준을 악용하기 쉽다는 것에 있다. 이는 총공사 예정원가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정에는 가정과 예측치가 포함되기 때문에 편의(bias)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
진행기준 회계처리의 핵심 세가지는 1)도급금액과 2)총공사 예정원가(실행원가)의 추정, 3)공사진행률의 산정이다. 이중 분식에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것이 공사진행률의 산정이다. 공사진행률의 산정은 총공사 예정원가(실행예산)를 분모에 놓고, 실제 발생한 원가를 분자로 놓으면 간단히 계산된다. 매년 회사의 매출액이 도급금액에 공사진행률을 곱해서 산출 되므로, 건설회사의 이익은 공사진행률에 따라 결정된다. 도급금액이야 외부 업체와 계약한 금액이기 때문에 외부에 확인하기도 쉽고 검증하는 것도 간단하다. 하지만 공사진행률은 공사예정원가(실행예산)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좀 복잡한 문제가 된다. 문제는 복잡한 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누구도 쉽게 검증할 수 없으므로 회사에서 총공사 예정원가(실행예산)를 쉽게 조작할 수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에서도 총공사 예정원가를 적게 산정하고 공사진행률을 부풀려 영업이익을 실제보다 높게 산출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공사진행률을 조작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회사가 도급 공사에서 얻을 총이익은 ‘도급금액 - 실행예산’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총이익이 상수로 정해져 있는데, 이것을 한두 해 당겨쓰면 그 다음 연도의 이익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한두 번, 한두 곳의 공사 이익은 당겨쓸 수 있지만, 요즘처럼 해당 업종에 불황이 찾아오면 논둑 터지듯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손실이 밀려온다. 결론적으로 총공사 예정원가에 대한 추정의 변경을 통해 이익이나 손실을 당겨쓰거나 나중에 쓸 수 있다는 것이 수주산업에서 분식회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이다.
투명성을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
지금까지 국내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고,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사외이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젠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의 구축보다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서두에 언급한 국제기구의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회계 투명성은 글로벌 기준에 맞춘 시스템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소기업회계기준을 잘 적용하고 있는 회사가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는 회사보다 회계투명성이 낮다고 평가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회계기준은 기업의 3대 활동인 영업활동, 투자활동, 재무활동의 결과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분식회계는 회계기준의 문제가 아니다. 매출이 발생하여 세금계산서가 발행되었고, 거래명세표가 존재하며, 심지어는 통장에 대금을 회수한 기록까지 남겨져 있다. 회사는 이 거래를 있는 그대로 회계처리 했다. 하지만 회계감사가 끝나자, 이 매출은 반품 처리되었고 대금은 돌려주었다. 회사는 이것도 그대로 회계처리 했다. 어디에서 분식이 발생하였는가? 회계기준은 거래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임무를 다했다. 그러나 이 거래가 결산기말의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다른 업체와 공모하여 발생시킨 것이라면, 공모가 분식의 원인이 된 것이다. 분식회계는 회계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의 의도에서 온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와 재무자문업무를 수행하였으며, 2012년부터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에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기업전략수립과 회계, 세무자문(가업승계, 상속세 및 증여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