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아닌 릭샤, 파키스탄의 교통 혁신은 지금
테슬라 아닌 자전거, 노르웨이 전기차 도입정책
첨단 만능주의의 함정, 기본에 주목하라
▲ 인도에서 운영되고 있는 릭샤(Rickshaw)
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Idea in Brief
최근 인공지능, 3D 프린터, 전기자동차, 그리고 사물인터넷 등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산업변화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각 부문에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구글, 우버, 테슬라와 같은 업체들과 경쟁할 첨단기업을 우리나라에서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난무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대목에서 딴지를 걸고 싶다. 과연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과 경쟁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바람직한 일일까. 오히려 첨단이 아닌 방식 속에서 우리 나름의 창의적인 방법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우리나라는 국가규모에 비해 상당히 다양한 학문과 산업분야를 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와 인구규모가 비슷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특정 원자력공학, 조선공학, 항공공학, 농곤충학과와 같은 소수 학문분야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의 사정에 따라 주력하는 학문이나 산업을 특성화한 탓입니다. 스포츠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아마 올림픽에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목의 국가대표를 출전시키는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인구대국 외에는 드물 겁니다. 게다가 잘하기까지 합니다.
첨단 만능주의의 함정
이런 다양성은 좋은 점일 수도 있지만, 특정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해외 주요 대학의 경우 학과별 교원이 수십 명씩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영학이나 전자공학과 같은 학과를 제외하면 한 학과의 교수들이 십여 명 이내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다보니 세부학문 또는 산업분야로 들어가면 국내에서 수준 높은 전문가를 다 모아봐야 십수 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흔합니다. 이처럼 소수의, 그것도 서로 선후배이기 십상인 전문가 사이에서 치열한 찬반토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분야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납니다. 논리도 비슷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 또는 유럽의 상황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 분야에서 몇분의 일 또는 몇십분의 일의 역량밖에 안되므로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해당분야의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흔합니다. 이런 정부지원 요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됩니다. 주장에 앞서 중요한 가정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세계 최첨단과 경쟁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논의를 자주 접하다 보면 괜히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과 경쟁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바람직한 것인지 궁금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공지능, 3D프린터, 전기자동차, 그리고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산업 변화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각 부문에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져갑니다. 구글, 우버, 테슬라와 같은 업체들과 경쟁할 첨단 기업을 우리나라에서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난무합니다.
우버는 릭시에게 배운다(?)
사실 이들의 힘을 생각하면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첨단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업 가운데에는 의외로 아주 오래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키스탄에 올해 진출한 우버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파키스탄의 휴대전화 이용자 대부분은 데이터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용 탓입니다. 우버는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받기로 하는 등 파키스탄 현지상황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일은 도무지 가당하지 않습니다.
대신 파키스탄에는 ‘릭시’라는 스타트업이 성장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는 고급승용차 대신 ‘릭샤(자전거 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교통수단)’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앱이 아니라 문자메시지를 기반으로 하고 구글맵을 이용해서 아주 대략의 위치를 제공하는 수준이라 우버에 비하면 거의 원시적이라고 불러야 할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국민들의 상황에 잘 맞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덕에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한 루머에 따르면 우버가 파키스탄에서만큼은 릭시를 흉내내서 문자메시지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전기차 도입정책, 테슬라 아닌 자전거
테슬라의 창립자 일런 머스크는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 문제를 푸는 기술적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놀라운 배터리 관리기술과 소프트웨어 역량은 그야말로 최첨단이라고 불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를 도입한다고 해도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의 도입과 탄소포집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적 대안들이 동시에 연구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관련된 첨단연구가 진행 중이고, 우리도 이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구개발 상황을 감안하면 탄소배출을 멈추는 것은 요원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최근 노르웨이는 불과 10년 이내에 교통기관으로 인한 탄소배출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노르웨이의 전기자동차 도입정책에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만, 사실 이번 계획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전거 이용 확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탄소절감 교통기관을 개발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더 확실한 탄소배출 절감방법이겠더군요.
최근 제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뉴스(정치권 뉴스는 매일매일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만)는 우리나라 상당수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 결석을 하거나,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이 오래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는 미안함이 한동안 제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국민의 삶이 풍요로워지기 어렵습니다.
혹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첨단의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마구 달리는 동안 매우 기본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름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을 다른 나라의 ‘첨단’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헛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지 가끔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