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창업지원단장
Idea in Brief
지난달 TIPS 운영기관 더벤처스를 운영하는 호창성 대표가 검찰에 구속됐다. 호창성 대표는 수십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그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스타트업 생태계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 수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정부가 스타트업 지원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민간에 맡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우리 앞에 거대한 시험문제가 놓였다. 시장실패냐, 정부실패냐, 시계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
어수선한 시절입니다. 유권자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총선의 열기가 가라앉자마자 산업구조조정이라는 까다로운 시험지가 날아들었습니다. 모든 산업은 어쩔 수 없이 쇠퇴기를 만납니다. 쇠퇴기에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는가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진과 정책결정자의 역량을 판단할 기회라고 말하는 교과서들이 있습니다. 국제적 경쟁력을 잃은 것이 분명한 산업을 부여잡고 혹시나, 혹시나 시기를 놓친 경영자들이나, 그런 기업들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대출을 제공하면서 쉬쉬해온 정책당국자들의 모습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만, 지금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 시간입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시험기간을 맞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TIPS운영기관인 더벤처스의 호창성 대표가 구속된 일입니다. 이것은 매우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관계나 법적 논점에 대한 보도가 충분히 이루어져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 문제의 핵심 논점은 정부지원금을 받게 해준 것을 빌미로 투자금 대신 과도한 지분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국 공방은 가치평가의 적정성과 투자자의 비재무적 기여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든 간에 이미 스타트업 생태계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스타트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가치평가에 대해 검찰과 같은 사정기관이 사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2000년대 초반 유사한 상황을 겪었고, 그 결과 수많은 유망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지 못해 사라져 갔습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파장은 정부 지원의 수준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많은 매체들이 “왜 스타트업 활성화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벤처캐피탈의 가장 중요한 투자자(LP)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투자는 민간에 맡기라는 주장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정부는 손 떼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극단적인 입장을 선택하면 우선 좀 멋있어 보이고, ‘적정선’이 어디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정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벤처캐피탈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지원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적어도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투자만큼은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시장실패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적이 없고,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낯선 스타트업들에 대해 투자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고 (정보비대칭), 이로 인해서 실제로는 큰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상(시장실패)이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이럴 때 정부가 개입하여 투자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입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선진경제국가에는 정부주도의 벤처캐피탈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부가 이렇게 나서면 민간투자가 도리어 위축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구축효과’ 이론입니다. 1990년대에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최근 수년간의 연구들은 이런 구축효과를 거의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주도 자금이 민간벤처캐피탈의 수익성을 증가시킨다는, 상호보완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친김에 말씀 드리면, 스타트업에 대한 주장 가운데에는 이처럼 근거가 부족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최대 언론사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엔젤투자자가 너무 적고 그 숫자는 미국의 30분의 1 밖에 안 된다면서 우리나라가 매우 낙후된 나라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엔젤투자자 수는 인구대비 매우 특이합니다. 유럽국가들의 경우 엔젤투자자는 국가별로 수천 명 수준으로서, 우리나라의 엔젤투자자 수는 인구를 감안하면 이미 유럽국가들 가운데 상위수준에 해당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본질적으로 매우 역동적으로 변하고, 초기투자에 관련된 각종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최근 보도 가운데에는 그 의도마저 의심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민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는 빠지라는 주장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이런 주장에 흔들리는 것은, 정부가 개입해서 잘 된 일이 별로 없더라는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개발연대의 사고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형 유튜브나 한국형 알파고를 외치는 정부가 과연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수준 높은 일을 잘 해낼 리가 있겠냐 하는 의구심, 다시 말해 정부실패에 대한 큰 우려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정부실패를 우려해서 더 많은 절차와 형식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엄정하고’, ‘철저한’ 기준으로 정부의 행동을 규제하자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우리는 물론 대략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시험문제는 우리 앞에 놓였고, 시계도 째깍거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