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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당신은 사랑만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by 콘텐츠본부

2015년 12월 23일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5호(1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당신은 사랑만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기업 R&D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시료 또한 제품이다. 실물이고 재고다. 그렇기 때문에 물류를 이용한다. 비록 물류비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많은 분량의 물류 자원을 이용하고 있고, 실제로 실물재고 입출고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실물재고 관리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쟁사와 누가 더 먼저 개발하는지 경쟁하는 마당에 ‘물류’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는 상품화되고 나면 결국 매출원가로 배분된다. 조금이라도 싸게 개발하는 것이 제품 경쟁력을 위해서 더 나은 방향이 되지 않을까. 연구개발 분야에서 쓰는 시료의 재고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운송비는 합리적으로 지출되고 있는지도 한번쯤 뒤돌아볼 때가 되었다.

 

기업이 영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무조건 비용을 절감하는 기업보다 비용을 절감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다. 여타 직군에 대해서는 채용을 하지 않거나 비정규직 채용을 할지언정, 연구원만큼은 고학력자를 외국까지 가서 데려와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업이 존경받는다. 연구개발 분야 종사자는 일은 힘들지언정 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그래서 무한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다.

그렇다면 그렇게 받은 연구개발 비용으로 연구원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연구한다. 무슨 연구를 할까? 지금은 상품화가 힘들지만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연구를 하기도 하고, 당장의 상품화를 목표로 연구를 하기도 한다.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소를 짓거나, 연구소 건물을 임차하고, 연구원을 채용하고, 장비를 구입하고, 시료를 구입하며, 시제품을 만들고, 시제품 테스트를 준비하며, 각종 정부기관이나 국제기구의 인증을 받는 등의 업무를 모두 연구개발 과정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연구비와 개발비로 나뉘어져 연구비는 판매비와 관리비, 또는 제조원가로 처리되고, 개발비는 무형자산으로 처리된다.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오려면 시료도 충분히 갖춰야 하고, 테스트도 충분히 해야 하며, 더 많은 연구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더 많은 인증기관의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기업의 다른 부문에서 흔히 일어나는 원가절감 활동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실제 한 연구소에서는 연구원들이 테스트를 하느라 이것저것 만진 시료는 폐기한다고 한다. 그 시료가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연구원들이 손을 댄 만큼 실사용 과정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기하면 당연히 다른 시료를 만들거나 조달해야 하고, 그 시료는 당연히 연구개발비를 지출해서 조달한다. 잠깐, 시료도 결국은 제품 아닌가? 맞다. 제품이다. 실물이고 재고다. 실물이고 재고기 때문에 그것도 물류를 이용한다. 비록 물류비로는 집계되지 않을지언정 많은 분량의 물류 자원을 이용하고 있고, 많은 실물재고 입출고가 발생하는 분야가 바로 연구개발이다. 하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의 실물재고는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을까?

연구원들의 특성들, 즉 투자를 많이 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야’, 굳이 그걸 따지지 않더라도 ‘많이 배운 고학력자들’,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 다각도로 해당되는 ‘비용항목’(심지어 운송비용도 써야 한다), ‘반드시 효율만 따질 수는 없다는 특성이 맞물리면? 연구개발 분야는 프로세스부터 비용 지출까지 비전문가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분야가 된다. 그렇다고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할 고학력의 연구원들에게 회사의 절차를 가르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연구개발 분야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입퇴사가 잦다. 교육시켜 놓으면 회사 절차를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그런가, 한때 모 대기업 관리팀에 근무했던 필자의 지인은 연구개발 분야 감사가 참으로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필자의 과거 경험담 하나. 연구원들은 자기 회사에서 양산된 제품을 연구용 시료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 고객에게 돈 받고 팔아야 할 물건을 시료로 가져다 쓰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연구개발비를 지출하고 해당 재고를 물류센터로부터 불출 받아 사용한다. 물론 물류센터로부터 불출된 시점에 연구개발비가 인식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물류센터 직원의 불출절차 없이 그냥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연말이 되면 연구개발비 지출 품의는 되어 있는데 실제 지출이 되지 않은 데이터를 모두 찾아내서 실물이 불출되었는지를 물류센터 직원들 및 연구원들과 함께 확인해야만 했다. 확인 과정에서 한 연구원과 했던 유선통화 내용을 재현해 보겠다.

 


후버 : OOO씨 되시죠? X월 X일에 OOOO 제품 불출품의 올리셨는데 이거 가져가신 거 맞아요?

OOO : 네 가져간 건 맞는데, 그거 도로 가져다 놓았는데 문제 되는 거 있나요?

후버 : 아니 도로 가져다 놓았다고요? 그럼 물류센터 직원에게는 돌려줬다고 얘기해 줬습니까? 이거 아직 불출 안 된 것으로 나와요.

OOO : 돌려줬다고 얘기는 안 했는데요? 저는 그 물건 가지고 가서 사진만 찍어서 사용한 다음 고스란히 다시 센터에 갖다 놓았는데요? 저는 센터에 갖다 놓았는데 아직도 이게 불출처리가 안 된 것으로 나오고 있으면 이건 물류 시스템이 잘못된 거 아닌가요?

후버 :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물건을 가지고 나오려면 불출처리가 된 다음에 갖고 나와야 하고, 사진만 찍어서 사용하고 도로 가져다 놓았다면 제품은 포장을 개봉했으니 더 이상 신품도 아닌데 물류센터 직원에게 말을 했어야 그 재고를 입고해서 재포장이라도 할 거 아닙니까? 아무리 도로 가져다 놓았다 해도 시스템 처리가 안 되어 있으면 실물과 물류시스템은 당연히 안 맞는 거죠.



꽤나 단적인 예지만, 연구개발 종사자들이 물류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 정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물류센터는 어떤 의미일까? 자기가 필요한 시료가 있으면 가져다 쓰고 맘대로 돌려주면 되는 시료 창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물류센터 직원들도 거래처 출하에는 눈에 불 켜고 일하지만, 막상 이렇게 사내에서 물건 오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긴, 연구원들 못지않게 물류센터 직원들도 입퇴사가 잦으니 절차를 알고 일하겠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더 심한 얘기 해 드릴까? 신제품에 필요한 부품 개발을 협력사가 개발하고 있을 경우 시료를 불출해서 협력사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물류센터의 운송자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 자체적으로 운송업체를 이용하거나, 퀵서비스를 이용한다. 협력사가 만약 해외에 있다면 가장 비싼 국제특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연구개발 과정의 시료 재고관리와 운송관리를 과연 연구개발비 지출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해도 괜찮을까? 작년에 모 대기업에서 비용절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연구소에 시료를 40% 줄이라는 지시를 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시료가 줄어야 시료 관리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을 잘 아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연구소 전체적으로 소수의 운송업체에 일감을 몰아줘서 운송비를 절감하고, 퀵서비스나 국제특송 또한 연구소 전체적으로 혼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경쟁사와 누가 더 먼저 개발할 지 경쟁하는 마당에 그게 중요하냐고? 연구개발비는 상품화되면 매출원가로 배분되는데 조금이라도 싸게 개발하는 것이 제품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이쯤 되면 연구개발 종사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자, 사랑받기 위한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연구개발 분야에서 쓰는 시료의 재고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운송비는 합리적으로 지출되고 있는지도 한번쯤 뒤돌아볼 때가 되었다.



콘텐츠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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