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심미안, 이제는 심물류안이 필요한 때

by 콘텐츠본부

2015년 11월 23일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4 호 (10 월호 ) 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심미안(審美眼),
이젠 심물류안(審物流眼)이 필요한 때

 

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Idea in brief
올초부터 이번호까지 총 10회 연재를 통해 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들을 통해 SCM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결국 SCM은 ´우리들 머릿속에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핵심가치´다. SCM을 핵심가치로 바라보는 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다. 그다음의, 그리고 또 그다음 패러다임의 모습이 무엇이든지 간에, 공급사슬을 둘러싼 모든 모습들을 마음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즉 심물류안(審物流眼)을 키워야 할 때이다.

 

그동안 CLO에 연재한 <미친 SCM이 성공한다>의 모든 내용들은 아주 조그마한 궁금증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SCM은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왜 SCM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 의미가 애매할까? 그리고 왜 우리는 SCM이란 같은 단어 앞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SCM과 물류란 용어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때로 올라가야 한다. 그 시작은 인류의 필연적 숙명이었던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류는 큰 상실과 아픔을 겪었지만 물류라는 소중한 기술을 선사받은 것이다. 이후에도 물류와 SCM은 많은 이들의 노력과 작은 행운이 더해져 지난 60년간 쉼 없이 성장해 올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통찰과 그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통해, SCM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우리들 머릿속에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핵심가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가치로서의 SCM은 전체 생태계를 바라보는 것이 옳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명제를 만들게 해주었다. 바로 “전체로 바라보는 SCM은 다 옳으며, 그렇기에 SCM이 산업과 그 비즈니스 모델을 정의한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는 단순한 추측과 가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언급되었다. 이 기업들이 위 명제가 이미 우리 주변에서 현실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루 7만 개의 도시락을 배송하는 일본의 타마고야. IT시스템 없이 전화와 팩스만으로도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풍성하게 해주어, 모든 SCM이 옳다는 명제를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ZARA, H&M;, 그리고 UNIQLO는 패션 산업 내에서 SCM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신선한 노력을 통해 옳고 그른 길이 아닌, 오직 자신의 길만이 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미국에서 신발을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인 뉴발란스 또한 이 명제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좋은 기업이었다. 또한 온라인 신발 유통회사 Zappos는 ‘와우(Wow)’를 자아내는 고객 만족을 위해 창고를 운영하며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는 물류기업으로 변모했다. 핵심가치로서의 SCM이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통이 아닌 물류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IKEA도 가구를 만드는 일 자체보다 포장하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렇기에 일반인들에게는 세계 최대의 가구제조회사이지만, 우리에게는 탁월한 공급사슬 운영 능력을 갖춘 포장전문회사로서 의미가 더 크다. 애플도 전체를 바라보는 SCM의 관점을 통해 눈에 보이는 물건들뿐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로 디지털 공급사슬의 운영을 하게 되었고 곧 엄청난 수익 창출을 이루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마존이 왜 책은 한편에 접어두고 창고 운영에 열을 올린 것인지. 수많은 물류센터를 건설하고 당일배송이라는 카드로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경쟁하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업체를 인수하고, 무인자동차를 개발한 일. 당일배송을 통해 비트(Bit)가 아닌 원자(Atom)의 세상으로 뛰쳐나온 것 또한 전체를 바라보는 SCM 관점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기업들을 통해 많은 기업들이 궁극적으로는 SCM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명제를 통해 기업들의 이례적인 의사결정을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視而不見 聽而不聞(시이불견 청이불문) - “보기를 하되 보지 못하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쓴 안경을 통해 핵심가치로 SCM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탓에, 패러다임이 새로운 위기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이동을 요구한다.

 

대학(大學)의 정심장(正心章) 편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廳而不聞 食而不知其味(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해석해보자면 “눈뜬장님처럼 눈으로는 보지만 가슴으로는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가 들리되 마음으로 듣지 못하며, 입으로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앞으로 끊임없이 닥쳐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다”의 의미가 되겠다.

 

SCM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케이트 올리버(Keith Oliver) 역시 마음으로 보는 SCM의 중요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제쯤 SCM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정답: 기업들이 SCM의 세 가지 중요한 근간 원칙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필자도 패러다임 윤회의 역사가 말해주듯, 핵심가치체계로서의 SCM도 머지않아 진부하고 고루한 과거의 유증이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탄생시킬 수 있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그 어떤 위험과 위기가 다가와도 결코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 방법의 중심에는 ‘마음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능력만 있다면 위기를 극복해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큰 기회를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SCM을 핵심가치로 ‘바라보기’
세상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에서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눈과 관련된 어휘가 가장 많다. 영어만 봐도 그렇다. See, Watch, View, Look, Read, Witness, Observe, Visualize, Stare, Gaze, Glimpse, Glance 등. 왜 이렇게 눈과 관련된 어휘들이 많은 것일까?

 

눈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I See). 바라본다는 것(View)은 우리의 관점(Point of View)이 된다. 만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원대한 꿈과 상상력(Vision)이 되며, 이는 곧 사물의 본질을 안(In)으로 꿰뚫어 볼(Sight) 수 있는 통찰력(Insight)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는 발견(見)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SCM을 핵심가치체계로 바라본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있어 중요한 것은 ‘SCM’도, ‘핵심가치’도 아닌, ‘바라본다’라는 우리의 행동이다.

 

앞을 보지 못했던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학 총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동안 무심결에 지나쳐온 그들 앞의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얼마나 그들의 삶이 더 큰 즐거움으로 가득 찰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그런 과목입니다.”

 

SCM을 핵심가치로 바라보는 것. 그것은 이제 자그마한 시작이다. 그다음의, 그리고 또 그다음 패러다임의 모습이 무엇이든지 간에, 공급사슬을 둘러싼 모든 모습들을 마음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눈이 필요한 때이다.

 



콘텐츠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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