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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물류 거점으로 탈바꿈, 주유소의 이유있는 변신

by 송영조 기자

2018년 10월 16일

'주유소 기반 C2C 택배 서비스' 누가, 어떻게 사용하나

 

글. 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주유소가 물류와 만났다. 스타트업 줌마가 SK에너지, GS칼텍스와 손잡고 주유소 기반 C2C 택배 서비스 ‘홈픽’을 지난 9월 전격적으로 출범했다. 지난 수년 동안 주유소 시장은 경쟁 심화로 인해 전체 숫자가 꾸준히 감소하는 등 좀처럼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류를 만난 주유소는 과연 부침을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유소는 자가용을 타는 시민들에게는 편의점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 공간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주유소 시장은 부침을 겪어 왔다. 스마트폰 앱이나 내비게이션으로 손쉽게 주유소별 유가를 비교할 수 있고, 당장 급하지 않은 이상 소비자는 당연히 싼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기 마련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주유소는 이윤을 내기 어려웠고,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한 주유소가 문을 닫으면서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1991년 정부에서 시행한 주유소 거리 제한 완화 정책부터다. 사단법인 한국주유소협회 박동위 차장은 “정부에서 주유소를 확대 보급한다는 취지로 기존 거리 제한을 완화하는 정책을 폈다”며 “1995년에는 거리 제한이 완전 폐지되면서 주유소 숫자가 급증했고, 2014년 주유소 수는 1991년 대비 4배나 높은 1만 2,575개에 달했다”고 말했다.

 

주유소 숫자는 늘었지만, 수익은 줄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하나둘 폐업하는 업체가 나왔다. 박 차장은 “2010년경 전국 1만 3,000여 개에 달했던 주유소는 현재 1만 1,500여 개까지 약 1,500곳이 문을 닫았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폐업해야 할 시점이 지났는데도 폐업 비용이 비싸서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업체가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차장에 따르면 주유소로 쓰인 부지는 필연적으로 유류에 의해 토양이 오염되기 마련인데, 토양 복원 비용과 시설 철거 비용(지하 유류 저장 탱크, 상부 캐노피 등)도 추가적으로 소요된다. 이 비용이 적게는 1억 5000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까지 들기 때문에 문을 닫고 싶어도 닫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시골에서 두드러진다.

 

가격경쟁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 이용자들이 늘면서 주유소의 수익원 자체가 줄고 있으며, 최저시급 인상으로 경영 상황까지 어려워졌다. 박 차장은 “현재 상위 30% 주유소가 전체 물량의 6~70%를 가져가고 있다”며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영세 주유소들이 3~40% 물량을 나눠 먹는 구조”라며 쏠림 현상을 지적했다.

 

주유소 업계에서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선은 ‘셀프 주유소 전환’이다. 박 차장은 “보통 주유소에는 4~5대의 주유기가 있다. 주유기는 오래 쓰면 부품이 마모되어 주입 양이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으므로 교체 시기에 새 제품으로 바꿔줘야 한다”며 “과거에는 주유기 교체 시기가 되면 주유기를 바꿨는데, 요즘은 아직 교체 시기가 한참 남은 주유기라도 셀프 주유기로 교체해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답했다. 일반 주유기 가격이 7~800만 원, 셀프 주유기가 2,000만 원 남짓으로 훨씬 고가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이 1억 원에 이르는 교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셀프 주유소로 새 단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간의 재해석, 물류 거점

작금의 주유업계 상황에서 주유소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스타트업 줌마가 SK에너지, GS칼텍스와 손잡고 주유소 C2C 택배 서비스 ‘홈픽’ 서비스를 출범한 것이다. 홈픽의 택배 기사인 피커가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 물건을 받고 주유소 거점으로 가져오면, 주유소에서 목적지까지는 CJ대한통운에서 물건을 배송해준다. 쉽게 말해 주유소 기반의 방문 택배인 셈이다. 주유소는 어떻게 C2C 물류 거점으로 선택받았을까.

▲ 홈픽 사무실이 있는 중앙에너비스 수서지점에 직접 방문해봤다.

 

줌마 정주명 IT운영 부문 프로젝트 리더는 주유소 공간을 플랫폼화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정 리더는 “공유 경제 플랫폼의 하나로 주유소 공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었고,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주유소에 고객들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 택배를 부치는 서비스가 있었다. 지금의 편의점 택배를 연상시키는 서비스다. 그뿐만 아니라 주유소와 편의점을 연계한 서비스, 라이더 사무실 입점 등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는 “지금껏 도전했던 서비스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홈픽 서비스로 주유소와 택배를 결합한 관점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한 “택배 시장은 대기업이 대부분의 파이를 차지하고 있고, 인프라 등 규모가 큰 투자를 바탕으로 대량의 물동량을 다루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며 “하지만 최근 땅값이 많이 오르면서 택배 업체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나가고 있다 보니, 소비자에게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주유소처럼 고객의 생활 접점과 가까운 공간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류 서비스, 고민은 없었을까

정 리더는 홈픽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첫 번째는 이동 수단이다. 현재 피커는 다마스를 이용해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피커 한 명당 목표 물량은 하루 4~50건. 최대 60개의 택배를 실을 수 있는 이동 수단을 찾다가 1톤 미만의 소형 화물차(다마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전에는 더 작은 차량으로 시도했지만, 수용 능력이 부족했다고 한다. 오토바이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아도 열 개 남짓한 물건밖에 싣지 못해 결국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두 번째는 투하 지점(drop point)에 대한 고민이다. 고객으로부터 물건을 회수해서 보관할 수 있는 열 평에서 열두 평 남짓한 공간이 필요했다. 택배에 운송장을 붙인다든지 서비스에 필요한 여러 사무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다. 그만한 크기의 사무실을 확보할 수 있고 물류 거점으로도 쓸 수 있는 곳으로 주유소가 가장 적합한 후보로 꼽혔다는 게 정 리더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홈픽과 같은 서비스는 없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낸 정 리더는 “우체국에서도 방문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시간을 지정할 할 수 없다”며 “홈픽의 경우 한 시간 단위로 시간 지정이 가능해서 예약 주문이 많다”고 답했다. 기자가 인터뷰 한 당일 물량 중 1,800건이 주말 사이에 들어온 예약이라는 게 그의 귀띔이다.

▲ 홈픽 사무실 한 켠에는 고객으로부터 수령한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홈픽 서비스, 누가 이용할까

정 리더에게 주로 어떤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개인 고객들이 대부분이지만, 하루 열 건에서 스무 건씩 물건을 보내는 개인 쇼핑몰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꾸준한 배송 수요가 있는 고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무서나 법무법인에서 고객에게 서류를 부칠 일이 있을 때도 홈픽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이번 달에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출범한 만큼 아직 대중의 반응을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고객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라는 게 홈픽 측의 설명이다. 정 리더는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고 있고, SNS에 홈픽 서비스 이용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는 등 소비자들의 입소문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답했다.

▲ 9월 본격적으로 출범한 주유소 택배 서비스 홈픽의 귀추가 주목된다.

 

서비스 입점 과정은 어떻게

홈픽 거점은 주유소 실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다. 주유소에 택배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직원이 직접 확인하고 SK에너지나 GS칼텍스 측에 요청하면 네트워크 주선이 진행된다. 주유소 선정, 계약과 사용은 정유사 측이 맡고, 줌마는 주유소에 차량과 기사를 포함한 시스템 일체를 제공한다.

 

개인 주유소로부터 제휴 요청 문의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한다. 정유사와의 계약이 있어서 당장 개인 주유소와 제휴를 맺지는 못 하지만, 업계의 관심은 늘고 있다고 정 리더는 본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거점 물류 서비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또 “주유소의 지리적 이점을 택배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서비스 자체는 유용하다고 본다”며 “정유사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홈픽 서비스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홈픽 서비스의 핵심, 피커(picker)

고객으로부터 직접 택배를 수령해오는 역할을 담당하는 피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업무에 애로사항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에 있던 피커는 “물동량이 계속 늘고 있어서 피커 1인당 할당량도 늘고 있다”며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CJ대한통운과 함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양 측간 원활한 소통도 필요해 보였다. 한 피커는 추석 연휴를 한 주 앞둔 인터뷰 당일 귀향 교통편을 끊지 못했다며 “추석 연휴를 맞아 CJ대한통운은 20일과 21일에 쉬는데, 피커들은 아무런 통지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며 “CJ대한통운 측과 미리 일정을 맞춰 공지해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방문 택배 서비스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고객들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로 꼽혔다. 또다른 피커는 “고객 대부분이 젊은 여성분들이라 밤에 택배 기사가 방문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며 “물건을 약속한 시간에 문 앞에 두거나 경비실에 맡겨놓기만 해도 수거가 가능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했다.

 

현장에서 만난 피커에 따르면 학교 주변으로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가령 기숙사로 많은 짐을 옮겨야 하는 학생들이 홈픽을 이용해 이삿짐을 운반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홈픽 사무실에는 지방의 한 대학으로 부치는 물건이 보관중이었다.

 

주유소의 탈바꿈은 어디까지

향후 주유소에서 할 수 있는 확장된 개념의 물류 서비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주명 프로젝트 리더는 회수를 넘어 배송 서비스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 리더는 “온라인 주문에 맞춘 실시간 택배사가 되는 게 줌마의 목표”라며 “현재 홈쇼핑 채널과도 제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령 강남 지역의 상품 펑균 판매량이 100개라면, 해당 지역 인근 주유소에 상품 100개를 미리 가져다 놓고 당일 홈쇼핑을 통해 상품이 소개되면 즉각 배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객은 빠른 경우 한 시간 내로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정 리더는 “회사의 대표도 그렇고 저 또한 홈쇼핑 업계 출신”이라며 “오랜 경험상 방송 상품의 스케줄에 따라 오전 방송일 경우에는 당일 오후에 실시간으로 배송하는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년 상반기 즈음에 또 한 번 생활편의형 거점으로 탈바꿈하는 주유소의 변신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때 또 다시 기자는 취재에 나설 계획이다.



송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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