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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플렉스처럼...일반인 도보배송을 체험해봤다

by 송영조 기자

2018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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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날 신청했던 도보배송 일정이 확정되었으니 다음날 OO아파트 배송을 맡으면 된다는 짧은 글이었다. 일정이나 집결 장소는 당일 오전 열시 이후에 알 수 있다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업무 관련 진행 사항은 모두 업체의 업무용 '단톡방'에서 공지되었다. 잠깐 사이에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였다. 일단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찍 잠을 청했다. 

 

09:45
오전 아홉 시 사십오 분경 내가 배정된 아파트의 물량을 담당하는 분이 단톡방에 짧은 글을 올렸다. "열 시경 OO아파트 OOO동 앞으로 오시면 돼요"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나는 회사의 업무용 어플 하나만 다운받은 채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10:00

열 시경 배정된 아파트에 도착했다. 공지받은 장소인 아파트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멍하니 벤치에 걸터앉아 누구라도 와서 물건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10:15

열 시 십오 분경, 대형 화물차가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와 롤테이너 두 개를 내려 주었다. 담당자도 업체 관계자는 아니었다. 그저 이쪽 지역 물량을 실어 나르는,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답했다. 그는 짐을 아파트 단지 앞에 내려주고 유유히 떠났다.

 

두 개의 롤테이너 중 나에게 배정된 것은 하나였다. 60여 개의 크고 작은 택배가 롤테이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건은 생수부터 쌀, 세제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10:30
열시 반, 어플을 통해 기본적인 업무 절차를 숙지하고 본격적으로 배송을 시작했다.

 

업무는 단순했다. 어플에 표시되어 있는 물건과 실제 물건이 같은지 확인하고, 지정된 주소로 직접 배달하는 것이다.

 

택배 배달은 처음이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인터폰으로 경비실을 연결해 "택배입니다"라고 말하면(혹은 말 하기도 전에) 자동문이 열렸다. 개를 키우는 집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만 해도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들 때문에 긴장됐지만, 그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물건을 문 앞에 놓고 어플에서 사진을 찍고 '완료' 버튼을 누르면 고객에게 메시지가 가는 구조로 절차가 진행된다.

 

카트 가득 물건을 싣고 단지를 가로지르다가 물건을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금방 알아차리고 후다닥 달려가 물건을 찾아왔다. 이날 일어난 일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실제로 단톡방에서는 '배송하다가 길바닥에서 물건을 주웠는데 어떻게 하냐'고 문의하는 글도 종종 볼 수 있었다.

 

13:30
배송을 시작한지 어느덧 세 시간째, 대략 열 건의 택배만 남겨두고 배송을 완료했다.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짐을 싣고 동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서만 쉬며 연달아 세 시간을 일했다.

 

잠깐 쉬기로 마음먹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웠다. 십 분만에 후딱 먹고 단지로 돌아가 보니 오전에 물건을 내려준 화물차 운전 기사분이 아파트 입구에 와 계셨다. 바로 배송 업무를 재개했다.

 

14:30
배송을 모두 마쳤다. 이날 처리한 물량은 66건. 고객 부재중으로 회수하지 못한 반품 물건을 제외하면(실물 처리 기준이기에 미회수 물량은 건수에 포함이 안 된다고 한다) 겨우 60건을 상회하는 개수다. 건당 450원으로 임금이 책정되어 네 시간 동안 총 27,000원을 벌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6,75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다만 첫 배송인 만큼 요령이 없어 효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업체는 이런 사정을 잘 아는지 첫 배송자에 한해 만 원의 프로모션을 지급하고 있다. 총 수익은 37,000원. 총액의 3.3%를 소득세로 공제한다고 하니 최종적으로는 약 시급 9,000원에 해당하는 돈을 손에 쥐었다. 당일에 입금해주는 것은 아니고, 매달 정해진 정산일이 따로 있었다.

 

집으로
업무가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일이 막 손에 익기 시작했다. 조금 더 빨리,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 번에 또 할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업무 강도도 그리 강하지 않고, 근무 시간도 적당했다. 남의 간섭을 받을 일도 없고, 배정받은 물량만 소화하면 된다. 소일거리로 용돈 벌기에는 나쁘지 않은 일일 아르바이트, '일반인 도보배송'이었다.

 

※일반인 배송 관련 보다 자세한 내용은 CLO 10월호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송영조 기자

콘텐츠의 가치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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