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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의 미래가 ‘데이터’인 이유 _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by 박대헌 기자

2017년 12월 22일

모바일 인터페이스 이후 새로운 경쟁력으로 ‘보이스 인터페이스’에 주목 

보이스 인터페이스 시대의 변화하는 물류의 가치 

보이스 패러다임

시리의 추억

 

때는 2011년, 아이폰4S가 발표된 어느 가을날이었다. 같은 날 애플은 사용자의 음성을 듣고 작동하는 음성인식 기반 개인비서 프로그램 ‘시리(Siri)’를 내놓았다. 애플이 만든 홍보 영상 속의 시리는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서, 대화를 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실상 아이폰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시리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저 사용자에게 필요한 ‘명령어’를 시리에게 대화처럼 뱉을 뿐이었다. 적어도 당시 사용자들의 후기들을 봤을 때, 시리는 불필요한 기술, 혹은 아직 활용하기에는 불편한 기능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이폰은 여전히 잘 팔렸다. 그러나 ‘시리’ 때문에 아이폰을 구매하는 이는 드물었다.

 

시리

▲ 아이폰의 시리. 요즘 시리는 랩도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들의 일상 대화를 나누는 수준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음성인식 기반 인터페이스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모바일 인터페이스 이후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각광받은 것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존은 미국에서 ‘아마존에코’라는 상품을 내놓았다. 이 작은 스피커는 음성 명령을 통해 몇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음악을 들려주고, TV와 전등을 키고, 끄는 사소한 일들 말이다. 아마존에코는 꽤 잘 팔렸다. 출시된 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봤을 때 미국내 누적판매량이 1,800만 대*를 넘어갔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아마존에코로 대표되는 ‘보이스 퍼스트 디바이스’가 정말로 세상을, 그리고 물류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과거 ‘시리의 추억’처럼 끝나는 것은 아닐까.

*voicebot, Survey Says 18.8 Million Amazon Echo Devices Sold

 

카카오 미니

▲ 카카오가 지난 9월 공개한 첫 번째 보이스 스피커 ‘카카오미니’(사진= 카카오)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이 온다는데, 물류는?

 

보이스 퍼스트 디바이스의 등장과 그에 따른 변화를 유심히 지켜봤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 독서모임을 통해 인연이 닿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디지털 경제 및 테크 트렌드’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 스터디에서 나온 주제 중 하나가 보이스 퍼스트 디바이스라 불리는 AI(인공지능) 스피커였다. 스터디를 통해 보이스 인터페이스의 가능성을 확신한 이들은, 마침내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

 

스터디

▲ 저자들이 ‘디지털 경제 및 테크 트렌드’를 주제로 스터디를 하고 있는 모습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모바일퍼스트에서 보이스퍼스트로 인터페이스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이런 변화는 ‘터치’가 만들어낸 변화만큼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나는 보이스퍼스트가 만드는 변화는 물류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모바일 시대가 바꿔놓은 물류처럼 말이다. CLO의 필진인 박승범 SCM칼럼리스트의 글*에 따르면 모바일이 만든 물류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 덕분에 와이파이만 터지는 곳이면 어디서든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주문량이 늘자 택배를 비롯한 소량화물 배송이 많아졌다. 배달을 안 해주던 음식을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그렇게 나는 ‘보이스 인터페이스가 물류 또한 바꿀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의 저자를 찾아갔다. 공동저자 중 두 명인 홍윤희씨와 김영경씨는 각각 이커머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과 전략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 저자는 주로 책의 3부인 이커머스 관련 파트를 담당했다고 한다.

 

목소리가 시간을 재정의하다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3부의 제목은 “보이스 세상을 먹어치우다”이다. 보이스 인터페이스가 바꾸어갈 일상과 서비스에 대해 논한 장이다. 내가 이 3부가 인상적이었다고 저자들에게 말했더니, 그들은 웃으면서 “3부에 적힌 내용은 당장은 아니고, 미래에 다가올 일입니다”라고 답하더라. 아직까지 그 변화에 다다르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저자는 분명 그런 변화가 오는 것을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두 저자는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이 만들어낼 변화에 대해 필자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시간과 공간을 재정의할 것”이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시간과 공간을 재정의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걷다가 사고를 당하는 보행자에 대한 소식을 접한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보고 걷다가 주변을 주시하지 못하여 당한 사고다. 실제 우리가 스마트폰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주시하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 ‘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스크린이 없이도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음성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혹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날의 일정을 듣거나, 새로 추가할 수도 있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도, 스크린을 터치할 필요도 없다. 결국, 늘어난 멀티태스킹의 영역만큼 이용자의 가용시간이 늘어난다.

 

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분석기관 버토에 따르면, 흔히 이동시간으로 여겨지는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에 음성 비서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패턴을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이동시간에 보이스 인터페이스의 활용빈도가 높다면, 화물 운송에 종사하는 이들의 근로 환경 역시 바뀌게 되지 않을까. 문득 지난 달, 인터뷰를 했던 한 퀵서비스 기사가 떠올랐다. 그는 퀵서비스 오더를 체크하기 위해, 운전 중에도 계속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고 말했었다. 이를 보이스 인터페이스가 해결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공간을 먹어치우는 보이스 인터페이스

 

보이스 인터페이스가 바꾸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공간 역시 바꾼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일종의 ‘공동 공간’을 소환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거실에 놓인 TV를 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던 가족들처럼, AI 스피커 앞으로 여러 명이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 스피커로 음악을 같이 듣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가령 미국 기준으로 AI 스피커에서 4번째로 자주 활용되는 용도는 게임이라고 한다. AI 스피커를 통해 다함께 게임에 참여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각기 자신만의 스크린과 이어폰으로 쪼개진 거주 공간이 보이스 인터페이스 시대에는 다시 하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저자들의 전망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AI 스피커가 6년 전 등장한 시리보다는 재밌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 6년 전, 게임을 하기 위해 시리를 사용한다는 이들은 흔치 않았지 않은가.

 

노-서치 시대의 이커머스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일상의 영역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커머스 시장도 급격히 바꿀 잠재력이 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 ‘노-서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보이스 인터페이스로 물건을 산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다음은 그 가상시나리오다. 사용자는 AI 스피커에 말한다. “화장지가 떨어졌어. 추가 구매를 부탁해” 그렇면, AI 스피커는 그 ‘소리’를 듣고 구매 가능한 제품을 소개한다. 당연히, 소리로 알려주기 때문에 관련 제품을 전부 열거할 수는 없다. 몇 가지 제품으로 한정하는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그렇게 AI 스피커가 선별한 두 종류의 화장지가 있다고 하자, 과연 사용자는 다른 화장지를 추가로 찾아보지 않고 그것을 구매할까. 저자들에 따르면 제품 간 큰 차이가 없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소모품의 경우는, AI 스피커가 선별한 제품 목록에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더 싸고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추가적인 시간’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미 이와 비슷한 일들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소모하는 생활용품의 경우, 소비자들은 이커머스의 정기배송 서비스를 통해 ‘추가적인 검색’을 하지 않는 쇼핑을 하고 있다. 두 저자는 보이스 인터페이스 시대에는 이와 같은 일들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큐레이션에 대한 신뢰’이다. 추가적인 서치 없이도,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품질의 것을 내게 추천하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왜냐하면 각 사용자마다 구매하는 제품군에 따라 기대하는 가격과 품질, 그리고 특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장 싼 것, 혹은 가장 좋은 것을 추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보이스 커머스의 경쟁력은 ‘데이터’에서

 

결국 ‘데이터’가 중요하다. 그것도 각 이용자별로 정리된 구조화된 데이터가 필요하다. 따라서 보이스 인터페이스 시대에 이커머스 경쟁은 ‘데이터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게 두 저자의 주장이다. 단순히, AI 스피커와 같은 하드웨어를 잘 만들었다고 이길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얼마나 소비자에 대한 데이터를 제대로 가지고 있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시장의 선두주자는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두 저자에 따르면 수많은 소비자의 데이터를 흡수하는 마켓플레이스 사업자의 경우도 구조화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되는 물건에 대한 목록화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책과 같은 상품의 경우에는 한 개의 물건 당 하나의 바코드만 있다. 이 경우 어떤 물건이, 얼마나,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업체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켓플레이스에서 책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묶음 상품을 비롯하여 명확한 품목명이 되지 않는 물건들이 시장에서 오고 간다. 예를 들어 건전지 10개가 간 것을 알 수 있어도, ‘어떤 건전지’가 갔는지 불문명한 경우가 발생한다. 더욱이 셀러 입장에서는 정확한 품목 등록보다는 당장의 수익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켓플레이스 사업자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구조화된 데이터를 얻도록 그들을 닦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난 업체가 있다. 바로 아마존이다.

 

화물의 흐름을 넘어, 데이터의 흐름으로

 

아마존은 자체적으로 물류센터를 운영하여 셀러들의 상품을 입고하여, 이후 물류를 대행하는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By Amazon)를 제공한다. 즉, 상품 데이터를 그들의 물류센터 안으로 흡수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아마존프라임과 같은 정기구독 서비스를 가입하면 ‘아마존 풀필먼트’ 서비스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따라서 아마존은 ‘어떤 고객’(아마존프라임 이용고객 한해)이 ‘어떤 물건’을 ‘어느 가격’에 ‘얼마만큼’ 가져갔는지(풀필먼트 서비스로 흡수한 셀러의 상품 데이터를 통해)를 알 수 있다. 결국, 아마존은 물류창고라는 이름의 거대한 ‘데이터 창고’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존

▲ 아마존은 풀필먼트센터를 통해 단순히 물류업무를 대행하는 것 이상으로 고객과 셀러 양단의 ‘데이터’를 흡수하고 있다.

 

여기에서 물류 서비스의 가치는 새롭게 정의된다. 단순히 ‘화물’을 정리하고 이동시키는 것을 넘어서, ‘화물에 담긴 개개인의 데이터’를 구조화된 데이터로 바꾸는 역할을 물류 서비스가 떠맡게 된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향후 이커머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된다.

 

두 저자에 따르면 만약 아마존이 구조화된 데이터를 충분히 쌓게 된다면, 아마존 스스로가 ‘가격 결정권자’가 될지도 모른다. 각 소비자마다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지불의사를 파악하여, 그에 맞추어 상품 가격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서치’ 쇼핑 환경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결국 아마존이 권하는 가격대로 물건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한도가 개개인의 지불의사 내에서 정해지므로, 아마존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최대한 지불하면서도 소비자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당장 현실에서 위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존은 분명히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상당한 돈을 ‘물류 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 두 저자의 설명이다. 요컨대, 아마존의 거대한 물류투자는 단순히 현재가치가 아니라 미래가치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곳곳에 보급되고 보이스 인터페이스가 일상화되는 시대다. 다시 말해, 저자들이 말하는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의 시대가 와도 물류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 다만, 그 가치는 이제 ‘유형의 것’에서 ‘무형의 것’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미래에도 여전히 화물은 분류되고 이동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물에 대한 데이터’도 분류되고 이동된다. 화물 그 자체가 아니라, 화물과 함께하는 데이터를 위해, 물류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시대,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은 그 시작을 알리는 변화일지 모른다.

 

 

 



박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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