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정현 기자
“동대문 상인을 몰살하는 전안법, 인증 하나만 받아도 보세면티가 7~8만 원? 대기업만 ‘개이득’, 소상공인은 몰락, 소비자가 길거리에서 구매하는 옷 가격은 오른다….”
올해 초 뜨거운 감자였던 ‘전안법’과 관련해 떠도는 이야기다. 2015년 말 국회에서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 관리법’의 공산품안전관리 부분과 ‘전기용품안전 관리법’을 통합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을 제정해 통과시켰다. 그런데 생활용품 부분에 의류 및 액세서리가 포함됨에 따라, 해당 제품들이 전기용품처럼 의무적으로 KC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안법에 의하면, 패션 관련 상품을 생산하여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판매자 역시 온라인상에 KC마크를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한다.
전안법 시행령은 금년 1월 28일 내려졌다. 그러나 중소상공인들의 강력한 반발로 법 시행은 한시적으로 유예된 상태다. 산업 곳곳에서는 전안법이 시행되면 KC인증 취득 비용이 급증해 소비자가격이 높아질 뿐 아니라 소상공인이 몰락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전 전안법 개정을 약속한 바 있다. 특히 올해 3월까지는 전안법으로 인해 소비자가 입는 옷 가격이 오르고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며, 여론 역시 전안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지금 전안법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식어버렸고, 정부도 전안법과 관련하여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중소상인들은 전안법의 개정 혹은 폐지를 외치고 있으며, 관련 기관들도 전안법 개정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전안법에 관한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전안법 개정을 총 4차례 건의한 바 있다.
서울시는 7월 20일 소상공인연합회와 함께 ‘소비자 안전 확보·소상공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방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중현 소상공인연합회 전안법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토론회에는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의 섬유, 원단 상인들을 비롯하여 전통시장, 의류제조 공장, 액세서리 상인 등 중소소상공인이 대거 참여했다”며 “전안법 개정 이후 산업계뿐 아니라 소비자단체, 정부단체 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최초의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정부와 많은 업계 관계자가 이미 전안법을 개정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안법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개정돼야 하는 것일까.
▲ 서울시는 지금까지 총 4차례 전안법 개정을 건의했다.(*자료제공: 김현기 서울특별시 공정경제과 전문관)
제조사가 덤터기를 쓰라는 현행법
앞서 말했듯 전안법은 전기용품 관리법과 생활용품 관리법을 통합해 만든 법이다. 전안법은 옷(생활용품)과 전기용품을 대등하게 다루고 있다. 둘 다 비슷하게 위험하다는 뜻일까. 동대문 테크노 상가 관계자는 “우리가 평소에 입는 티셔츠와 머리를 말릴 때 코드를 꽂아서 사용하는 드라이기가 같은 위해도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전안법에 의하면 옷이나 액세서리에 유해물질이 포함돼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인데, 도대체 의류 공급사슬 어디에서 유해물질이 첨가된다는 것일까.
우리가 입는 옷을 거꾸로 해체해보자. 옷을 만들려면 원단이 필요하다. 생지가 염색공장에서 염료로 염색되면 원단이 만들어진다. 원단에 패턴이나 무늬를 넣기 위해서는 염색된 원단에 날염 과정을 거친다. 이후 가공 단계에서 유연제를 넣고 열을 가해 가공하면 비로소 옷 제작에 사용되는 ‘원단’이 만들어지고, 이 원단은 옷 제조공장으로 보내진다.
옷 제조 공장에 도착한 원단은 재단, 박음질, 다림질을 거쳐 우리가 입는 옷으로 탄생한다. 청바지에 워싱을 넣거나 그라데이션 무늬인 타이(Tie)무늬를 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장에 도착한 원단은 단순 가공만을 거쳐 완제품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옷 품질은 대부분 제조공장 이전에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 원단의 생산단계
가죽제품도 마찬가지다. 원피가죽 가공을 거쳐 가죽을 태닝하고 염색하여 건조한 뒤에야 공장에서 가죽으로 상품을 제작한다. 가죽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 재단, 접합, 제조와 같은 가공 수준의 작업이고, 오히려 원자재인 가죽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염료 등의 화학물질이 다량 사용된다.(물론 가공 단계에서도 무늬를 내기 위해 염색제·마감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전안법은 이러한 구조 전체는 이해하지 못한 채 최종 결과물인 ‘제품’ 자체에만 집중한다. 그러니까 전안법에는 원자재 관리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는 (전안법이)그동안 최종 의류제품 생산자에게만 제품 안전에 대한 표시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인 동대문 의류상인들이 과도함 부담을 지게 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전했다.
한 의류 제조사 관계자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고의를 가지고 유해물질을 넣지 않는 이상 유해물질이 발견되기 어렵다”며 “대부분 옷의 안전성은 원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되는데, 모든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동대문 상인들이 안전성 검증에 필요한 비용을 전부 감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서는 제조사가 안전한 원단이라고 해서 받아와 옷을 제조했다 하더라도 검사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면 책임은 제조사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원단업자의 책임은 빠지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현행법에는 원단업자와 제조사의 부담을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원단공장이 인증을 받으면 합리적인가
이미 강조했듯이, 원자재와 생산에 쓰이는 약품 등은 완제품의 안전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공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는 그 다음이다. 그렇다면 개별 소상공인이 아닌 원단 제조업체에 KC인증 취득 의무를 지우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면 어떨까.
동대문시장 한 관계자는 “모든 제조 및 유통상인이 ‘인증을 받은 원단’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면 월 수백만 원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원단으로 만든 제품이 수백 개의 동대문시장 업체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수백 개 업체가 개별적으로 인증을 받는 것보다는 원자재 업체가 인증을 받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원단 제조업체에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원자재 제조업체에 인증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 중 하나인 박중현 위원장 역시 현재는 원단 업체가 부수적인 인증 의무를 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원단 업체에게 이러한 부담을 지우면 소형 원단 업체도 연간 수억 원의 인증 비용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단 업체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원단의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원단 생산 공장 관계자는 “현재 공장을 운영하면서 폐수관리 기준을 맞춘 상태고, 현장에서 일하는 생산 공장 근로자를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공장에서 생산한 원단을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미주 등 세계 각지로 수출하고 있으며, 한 번 솥에 삶고 나면 약품이 남기 때문에 싸고 저급한 약품을 쓰는 것도 꺼린다”고 덧붙였다. 대한방직 관계자 역시 “몸에 해로운 원단으로 옷을 제작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 않을까”라며 전안법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3천원 티셔츠가 4천원이 되는 마법
전안법 시행은 올해 말까지 유예된 상황이다. 개정이 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전안법이 계획대로 시행된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의류, 신발, 가방 등의 판매가 모두 금지된다. 이미 대기업이 KC인증을 의무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이 개정되지 않고 그대로 시행되면 피해는 중소상인들이 입게 된다.
국내에서 의류 및 액세서리를 제조하거나 도매로 유통하는 상인은 대개 소규모 다품종 제품을 다룬다. 이들은 KC인증을 위한 시험 검사비 부담 등의 이유로 ‘시험 검사 서류 보관 의무’ 및 ‘인터넷상 정보게시 의무’를 지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을 다품종 대량생산을 하는 대기업과 같은 시선에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액세서리의 검사 인증비는 제품당 5~7만 원 정도이며, 섬유(의류)의 인증비는 6~11만 원 사이다. 간단한 의류와 액세서리의 인증비는 그나마 저렴한 편이며, 특정 물질이 포함되면 인증비는 더 비싸진다.
예를 들어 팔찌 하나를 검사하는 데 5만 원이 든다 치자. 그러나 한 팔찌에 여러 종류의 금속이 들어가면 검사 비용은 급격히 올라간다. 옷에도 여러 부속물이 포함되면 검사비가 높아진다. 한 옷에 5%도 차지하지 않는 부분도 반드시 검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뜻 봐도 합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일지라도 색상이 다르면 각각 다른 제품으로 분류돼 모든 색상의 제품을 검사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대문시장의 티셔츠 하나를 검사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92,000원이다. 같은 디자인의 셔츠를 5가지 색상으로 100장씩 총 500장을 생산했다고 가정해 보자. 제조사는 색상별로 5번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비용은 총 46만 원이다. 전체 티셔츠 500장을 검사비로 나눠보면, 티셔츠 한 장당 검사비는 약 920원 꼴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티셔츠가 동대문시장에서 2,500~3,000원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동대문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백화점에 납품되는 것과는 다르게 평균 단가가 낮다. 우리가 로드샵과 동대문을 방문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저렴한 가격 때문이 아니던가.
3,000원짜리 옷을 검사하는 데 920원을 써야 한다?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상인들은 검사비를 소비자가격에 일부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3,000원에 판매되던 티셔츠의 가격은 3,920~4,000원으로 올라간다. 가격이 30% 이상 상승하는 것이다. 이것도 500장의 티셔츠를 생산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만약 한 번에 생산하는 티셔츠의 숫자가 100장 아래로 내려가면 상품 가격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은 몰락, 소비자가 길거리에서 구매하는 옷 가격은 오른다’는 말이 한낱 괴담은 아닌 것이다.
▲ 같은 종류의 천이라도 색상이 다르면 색상마다 KC인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 종류의 티셔츠를 다섯 가지 색으로 찍어낼 경우에도 색상별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안법은 소비자를 보호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차치하고, 전안법이 거두는 효과는 과연 무엇일까. 전안법이 애초의 취지처럼 소비자를 보호하는가. 사실 비용이 어느 정도 들더라도 소비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만 있다면 이 법은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안법은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하나로 시장의 의견 수렴 없이 통과된 법이니까. 그러나 현재 전안법은 자국 산업 보호는커녕 소비자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KC인증은 그저 인증에 불과하다. 안전에 관해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가령 작년에 폭발 사고로 화제가 된 ‘갤럭시노트7’ 역시 KC인증을 받은 제품이었다. KC인증은 ‘Korea Certification’이다. 그런데 갤럭시노트 사건 당시 Korea(국가)가 안정성을 보장했나, 아님 사고 이후 피해자에게 보상을 했나.
▲ 완제품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품 전체에 대한 기본 안전 관리 부실(자료: 박장원 전국핸드메이드디자이너 모임 대표)
문제는 KC인증의 인증기준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액세서리에 ‘납’이 들어가 있어도 현행법상 KC인증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 금속 장신구의 경우 ‘니켈’만 안전기준에 걸리기 때문이다. 니켈의 포함 가능 기준 역시 애매하다.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에서 정한 바에 따르면, 금속 장신구의 경우 니켈 검출 수치가 0.5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0.5라는 수치가 애매하니 아예 ‘무(無)니켈’로 기준을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무니켈로 기준이 바뀌면 KC인증 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표원 피티시험 연구소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기준 0.5를 무니켈로 바꾸면, 니켈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검사비가 오히려 싸진다”며 “그러나 0.5를 넘는지 확인하려면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전했다.
국표원은 산업 전반에 니켈을 다 제거해버리면 해당 원자재 사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니켈 검출 기준은 귀걸이와 목걸이 같은 금속 장신구에만 적용될 뿐, 벨트와 같은 비접촉 장신구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어서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국표원의 말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 가정용섬유 안전요건에 대한 적합여부 확인 중. 니켈(Ni)의 용출량은 현재 0.5μg/cm²/week 이하다.
이렇듯 전안법은 소상공인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동시에 소비자의 안전 확보에도 한계를 갖고 있다. 박원순 시장도 “현재 전안법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있고, 소비자 안전 측면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도대체 기준이 뭔가요
전안법은 사전규제의 의미를 갖는다. 상품이 유통된 뒤 검사하는 게 아니라 제조 전부터 제품을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안법에 의하면, 한 샘플이 KC인증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같은 샘플을 이용해 만든 상품에서 추후 유해물질이 검출되면 제조사는 모든 패널티를 물고 상품을 폐기해야 한다. 또한 처음 검사 시에는 검출되지 않았던 유해물질이 나중에 검출된 경우에도 모든 책임을 원자재 업체가 아니라 제조사가 부담해야 한다. 검사소마다 다른 검사 결과가 도출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사전규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전안법은 애매모호함 그 자체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업계에 큰 혼란을 가져다준다. 남대문시장의 한 액세서리 상인은 “산자부 측에서 모델별로 인증을 받으면 장사를 계속해도 된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즉 귀걸이 인증 하나를 받고, 팔찌 인증 하나를 받으면 더 인증을 받을 필요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사업을 영위하는 중간에 제품에 들어가는 재료가 바뀌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해당 상인은 “산자부에 문의했을 때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 기자가 산자부에 문의한 결과, ‘동일 재료’라고 가정했을 때만 인증은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동일 재료라는 것의 기준도 모호하다. 한 번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했을 때 그 상품을 말하는 것인지, 발주(로뜨) 단위를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각기 다른 티셔츠지만, 제품을 구성하는 성분은 레이온이 30%, 폴리가 70%로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성분이 똑같으면 하나의 인증만 받아도 된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국표원은 “같은 원단일지라도 상품이 다 팔리고 재구매할 때 생산 공장이 바뀌면 다시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반발했고, 그러자 국표원은 다시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원단이 같으면 (인증을 다시 받지 않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국표원에 정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답변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인증을 위한 추출과정도 모호하다. 국표원에 따르면, KC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색깔별로 시료 추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색깔별로’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박장원 전국핸드메이드디자이너모임 전안법대응 TF팀 대표는 “한 가지 염료, 한 가지 물감을 가지고도 수십, 수백 가지의 색을 낼 수 있다”며 “같은 빨간 색이라도 염색약 비율과 온도에 따라 이번에 찍을 때와 다음에 찍을 때 나오는 색감이 달라지는데, 그러면 이 색은 같은 색인가 다른 색인가”라고 묻는다.
전안법에는 관리 부처 문제도 존재한다. 가령 염색과정이 약품관리에 속한다면 해당 과정의 관리부처는 환경부가 된다. 박중현 위원장은 “정부 기관이 관리 소관을 명확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현재로서는 자기들 부처의 편의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확하지 않은 법제 때문에 상인들은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다.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면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인증 기준도 애매하다. 액세서리업자 A씨는 귀걸이 상품 단 하나에만 인증을 받았음에도 KC인증을 받았다고 표시하고 있다. 도대체 이는 합법일까 범법일까. A씨는 “국표원이 어떤 게 맞다 아니다, 라는 기준이라도 명확하게 제시한다면 모든 걱정을 접고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애매모호하고,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인증기관의 수익성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원자재가 아닌 생활용품으로 인증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검사 대상을 늘릴 수 있고 이것이 인증기관의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땜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와 동대문시장 및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2016년부터 ‘KC 정보은행’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그리고 동대문·남대문시장 상인이 함께 만드는 ‘원단시험성적서 공유 경제 플랫폼’이다.
▲ KC정보은행
한 상인이 원단 검사를 받아 KC정보은행에 등록해두면, 다른 상인이 다른 상품을 인증받을 때 해당 원단의 인증은 미리 등록된 인증서로 대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업체가 B라는 원단을 등록했다고 치자. B라는 원단은 30개 업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나머지 29개 업체는 개별적으로 인증을 받을 필요 없이 KC정보은행의 인증서로 인증을 대체할 수 있다. 현재 이 정보은행의 검사비는 상인이 25%, 서울시가 40%, 시험기관이 35% 부담하고 있다.
현재까지 KC정보은행에 검사 등록된 건수는 총 673건이며, 이중 18건이 부적합건수(PH 15건, 아릴아민 1건, 폼알데하이드 1건, 니켈 1건)였다. 이는 전체의 2.6%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공산품과 비교할 때 굉장히 낮은 수치다.
그중에서도 15건에서 검출된 PH는 염색공장에서 충분히 원단을 삶지 않아 발견된 것이고, PH와 폼알데하이드는 한 번 세탁하거나 공기 중에 두면 날아가는 성분이라, 세탁기에 몇 번 돌려서 검사를 진행했다면 검출되지 않았을 물질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검사등록된 673건 중 정말 인체에 유해한 부적합건수는 2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KC정보은행도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여러 업체가 거의 동시에 원단을 들여와 비슷한 시기에 가공을 하는 상황에서, 한 업체가 검사를 등록하고 다른 업체가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KC정보은행에 등록된 원단을 다른 상인이 재구매 하는 비율이 10%도 안 된다는 것도 문제다. KC정보은행에 등록된 원단은 짧게는 한 사이클(한 번 생산 후 재생산하지 않는 경우), 길게는 한 시즌 동안 사용되고, 이후 해당 원단과 100% 일치하는 원단이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한 상인이 먼저 총대를 메고 검사를 등록하는 데도 일정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로 인증을 미루는 상황이 생긴다. KC정보은행이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 법 개정 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현재 KC인증을 하는 기관은 총 19개다. 그중 소상공인과 관련된 상품을 인증하는 기관은 7개 정도다. 사실 산업 전체를 인증하기에는 기관수 자체가 부족하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은 인증기관의 수가 부족하다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정부가 인증기관 확충에만 집중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동대문시장 내에 인증기관을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이에 반대했다.
인증기관 확충은 소상공인과 영세 제조업자들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된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상인들은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기관 확충과 비용 지원만으로 ‘땜질’을 하려 한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덮어준 채 변죽만 두드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상인들이 전안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증기관이 멀리 있어서, 인증비용이 비싸서가 아니다. 기관만 배불려주는 법이 아니라 진정으로 산업 현황을 고려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인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