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박상훈의 동남아파헤치기]인니 봉제공장서 만난 물류 ‘베테랑’들

by 박상훈

2017년 04월 03일

인도네시아

 

글. 박상훈 PT월드와이드로지스틱스 인도네시아법인장 / 정리. 엄지용 기자

 

최근 주목받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봉제, 신발제작, 전제제품 조립 등의 산업이 국가의 중심산업의 역할을 합니다. 모두 노동력 투입 비중이 높은 산업입니다. 이는 동남아의 저렴한 노동력 덕분입니다. 저렴한 노동력은 한국과 같이 어느 정도 산업발전을 끝낸 국가가 동남아로 생산공장을 이전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봉제공장들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사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봉제공장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일종의 타임루프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필자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직원 수천 명이, 같은 자리에 앉아 미싱을 돌리는 모습을 1년 12달 볼 수 있었습니다.

 

‘노동집약형 산업’ 현장은 인도네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도 CJ나 삼성, LG 같은 대기업의 물류회사가 진출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밑바닥부터 포워딩업체를 만들어낸 훌륭한 CEO분들도 많습니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서비스 산업이 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집약형 산업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며, 이는 인류가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이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필자는 본기고를 쓰기에 앞서, 인도네시아의 한 봉제공장에서 약 10년 동안 수출입과 자제를 담당해온 한국인 담당자분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같은 공장의 27년 역사를 함께한 인도네시아 수출입 현장 담당자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던 한국인 담당자를 어렵게 설득하여 전화와 서면, 대면 인터뷰까지 진행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물류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인니 물류부장 최광호의 하루

 

최광호 부장은 2007년부터 약 3,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버카시 지역의 봉제회사 ‘슬라라스까우사부사나(PT.Selaras Kausa Busana, 이하 ‘SKB’)’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공장 내의 전체적인 물류와 수출입 부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 생활만 30년 이상인 베테랑 중에 베테랑입니다. 공장 물류인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skb▲ SKB 공장전경

 

인도네시아는 아침이 빠른 나라로 유명합니다. 회사 정규 근무시간은 7시 30분에 시작하나, 대부분의 직원이 7시 이전에 나와서 업무를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최 부장 역시 5시 30분이면 집을 나섭니다. 교통 정체가 심한 나라라 10분만 늦게 출발해도 30분 이상 늦게 도착할 수 있어 아침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습니다. 최 부장 역시 회사를 가는 차 안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한 후 보통 6시 45분경 회사에 도착합니다.

 

회사에 도착한 최 부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출고해야 하는 완성품과 공장에 도착할 원자재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태엽이 맞물리듯, 3,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생산라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자재 투입이 필수적입니다. 하나의 부속이라도 제 시간에 공급되지 못하면 최소 1개 라인, 심할 경우 여러 개 라인이 동시에 작업을 멈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 부장은 밤사이 들어온 원자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오늘 수입 스케줄이 잡혀있는 수입자재가 정상적으로 잘 도착할 수 있는지 포워딩 회사에 연락하여 체크합니다. 원자재 스케줄을 확인한 이후에는 수출 스케줄을 확인합니다. 수입 컨테이너는 일주일에 10개 정도, 수출 컨테이너는 일주일에 15~20개 정도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수출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아, 수출이 특히 많이 몰리는 주에는 약 40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날 수출 스케줄이 잡혀있다면 완성반으로 가서 완성된 제품을 확인합니다. 정확한 사이즈와 패킹이 진행되었는지 살피고, 생산에 문제가 있을 경우 생산 담당자에게 독촉을 하기도 합니다.

 

최 부장은 대략적인 수출입 스케줄을 확인한 뒤 전 공장을 돌며 생산과 설비에 문제는 없는지 체크합니다. 에어컨이 없는 봉제공장 현장 특성상 현장의 온도는 30도를 훨씬 상회합니다. 때문에 약 30분 정도 공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온몸이 땀으로 가득 젖어버리고 맙니다. 아침 업무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현장 관리자들과 전체 미팅을 진행합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의 입출고 스케줄을 관리자에게 알리고, 관련 사항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체크합니다.

 

이미 많은 일을 진행한 것 같지만, 이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업무가 진행됩니다. 상주 세관원을 만나 관련 서류와 진행상황을 체크하기도 하고, 원자재에 문제가 있을 경우 급하게 한국이나 중국에 연락해서, 추가 원자재 입고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인도네시아도 수출입 업무가 대부분 ‘온라인화’되어 옛날처럼 수출입 관련 문서를 수북하게 쌓아 두고 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서 작성 업무는 물류 담당자에게 있어 가장 큰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전에 입고와 관련된 사항을 주로 체크했다면, 오후에는 출고와 관련된 사항을 집중적으로 체크합니다. 물건이 다 나와 있어도, 검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출고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오랜 인도네시아 생활로 한국 직원 가운데 인도네시아어가 가장 유창한 최 부장이 현지인 검사원들을 주로 상대합니다. 검사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검사원의 기분이 좋으면 잘못된 부분을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 조그만 실수에 꼬투리를 잡기도 합니다.

 

이렇게 검사가 끝나면 전체 완성품을 정리해서 본격적인 출고에 들어갑니다. 출고가 진행되는 동안 최 부장은 새롭게 입고 받아야할 스케줄을 확인하고, 수출 스케줄을 확정합니다. 이로써 하루의 전체적인 일과를 마무리합니다.

 

물류 베테랑들과의 인터뷰

 

최 부장과 이야기하던 중 인도네시아 현지인 담당자인 조아리(Johari) 매니저가 자리에 합류했습니다. 조아리 매니저는 SKB 봉제공장이 만들어질 때 합류하여 27년 동안 공장물류 업무를 담당해 왔습니다. 그야말로 이 공장과 역사를 함께한 것입니다. 조아리 매니저가 바라보는 현장에는 어떠한 이슈가 존재할까요. 수십 년 이상 공장물류를 수행한 두 명의 베테랑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조아리 매니저

▲ 현장 작업중인 조아리 매니저

 

박: 두 분 모두 SKB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최: 2007년 입사했으니 10년 차다. 365일 거의 똑같은 생활을 한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조: 1990년도 회사 창립 당시 입사했다. SKB는 나의 첫 직장이기도 하다. 당시 25살이었는데 지금은 50이 넘었다. 입사 할 때는 미혼이었는데, 지금은 첫아이가 결혼까지 해서 손자까지 있다. 어떻게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박: 조아리 매니저는 SKB의 성장과 함께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27년 전과 비교해서 회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 지금은 직원 수가 3천 명에 달하지만, 그때는 천 명 정도였다.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2공장도 그때는 정리되지 않은 땅이었다. 당시 이 땅에서 염소를 키웠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슬람 사육제)이면 키운 염소를 잡아서 직원들이 함께 나눠 먹었다. 당시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쿼타’(쿼터)라는 것이 필요했다. 쿼타를 받지 않으면 미국으로 수출할 수 없었다. 쿼타를 받으려고 관련 기관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박: 두 분 모두 오랜 기간 물류 업무를 맡아왔다. 물류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을 꼽아본다면 무엇이 있는가?

 

최: 이전에는 문서를 만들어서 직접 세관원의 결제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진다. 실제 서류를 뽑아서 일을 처리하면 쌓이는 서류의 양이 엄청나다. 또한 중요도에 따라 3~5년 정도 문서를 보관해야 했는데, 문서를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기에 이 과정이 매우 간단해졌다.

 

조: 그러나 온라인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분명히 많은 부분이 간소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온라인이기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가끔 세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IT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자카르타 지역 전체에 하루 종일 세관 시스템 에러가 발생하여 출고지시서를 뽑지 못했고, 이에 따라 모든 출고가 중지된 적도 있었다. 세관 시스템 에러가 지속되어, 수작업으로 일을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박: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조: 문제없이 출고가 진행되고 퇴근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 얼굴을 보면 모든 긴장이 한번에 녹아내린다. 사실 매번 반복되는 출고지만, 항상 긴장된다. 똑같아 보이는 일에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0년 정도 하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더 쉽게 일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지막 카톤박스가 컨테이너에 실리고 컨테이너에 잠금장치가 완료되는 순간까지는 긴장의 연속이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10년 전인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장님이 사표를 받자마자 찢어버리며 “조아리는 내가 죽기 전에는 회사 못 그만둔다. 끝까지 가자”라고 말하더라.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박: 그러면 물류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최: 언젠가 회사에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분실한 적 있다. 그때가 가장 난감했다.

 

조: 맞다. 정말 그 순간에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박: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조: 몇 년 전에 회사에 도난 사고가 발생하여 엄청난 양의 완성품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우리 공장은 비관세 지원을 받는다. 때문에 수입 원자재가 들어왔는데, 해당 숫자만큼의 완성품이 출고되지 못하면 세관에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다.

 

최: 세관도 문제였지만, 납기를 못 지켜 엄청난 고객 클레임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워낙 완성품이 많은 상황이다 보니, 도난당한 물건을 정확히 체크하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새롭게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은 생산하고, 기간이 남은 물건은 원자재를 항공으로 받아서 생산 후 항공으로 출고를 진행했다. 그때 이 일 수습하느라 조아리와 내가 열흘 정도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생산보다 물류가 상당히 바빠진다.

 

박: (이때 조아리 매니저가 미비된 출고업무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그럼 조아리 매니저에게만 마지막 질문.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물류를 하고자 하는 한국인에게 조언해 달라.

 

조: 한국 사람에게 인도네시아는 외국이다. 세관의 새로운 운영규칙이나 신규 법률이 나올 경우, 많은 한국인들이 그것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알아보는 것을 귀찮아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같이 아직까지도 법령이 자주 바뀌는 나라에서는 이 법령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관리자의 사소한 판단 착오나 법령에 대한 이해 부족이 세금 혹은 수출입 허가와 관련되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물론 27년을 이곳에서 근무한 내가 봐도 법령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항상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하며, 모르는 부분은 현지인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만은 꼭 강조하고 싶다.

 

박: 27년을 한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만해도 감동이다. 조아리 매니저가 30년, 40년 이 현장에서 든든한 물류인으로 남길 바란다.

 

조: (한국말로)감사합니다.

cctc▲ CCTV를 통해서 원격 현장관리를 가능토록 만든 관세청 시스템

 

박: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생산 공장에서 물류란 어떤 의미인가?

 

최: 물류에선 흐름이 중요하다. 물류는 흘러야 하는 것이고, 흐르지 못하고 막히면 모든 생산 기능이 마비된다. 사람으로 따지면 피가 잘 돌아야 하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물류 업무를 보면서 항상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다. ‘물류는 생산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물류는 항상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일 잘하는 물류인은 생산부서에서 그 사람을 하루 종일 찾지 않아도 되는 물류인이다. 아침 전체회의에서 나에게 하는 질문이나 요구사항이 많아진다면, 이는 입출고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법인장도 이전에 포워딩 담당자를 만날 때마다 꼭 하던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박: 기억난다. 포워딩 담당이 나에게 인사 오면 “앞으로 1년 동안 제발 한 번도 서로 전화도 문자도 하지 말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가 연말에 또 인사 오시면 제가 소주 한잔 사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 때가 벌써 7~8년 전이다. 당시는 수출입 통관과 관련하여 워낙 사고가 많았던 시기였다. 담당자에게 사고가 안 생겼으면 한다는 당부를 저렇게 이야기했다.

 

최: 공감한다. 회사 입장에서 나는 그냥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게 진짜 물류를 잘하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 모든 것을 시스템화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사람이 직접 관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다. 어디서든 물류의 흐름이 막힐 수 있다.

 

물류의 흐름이 막히는 곳에서 나는 항상 질문을 던진다. 그 대답이 ‘예스’냐 ‘노’냐에 따라서 나의 일거리가 결정된다. 어떤 때는 ‘노’라는 대답이 더욱 반갑다. ‘노’라는 대답이 나오면 정확한 수정사항이나 해결방법을 지시해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와 관련된 일을 더욱 긴장하며 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예스’라는 대답이 나올 때다. 경험상 꼭 잘되고 있다고 대답을 받은 부분에서 항상 큰 문제가 생기더라. 특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황이 최악이 아니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고는 잘되고 있다는 근무자의 대답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 곳에서 생겼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예스’라는 대답이 나오더라도 항상 의심하고,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물류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박: 쉽지 않은 일이다. 물류업무는 얼마나 했나?

 

최: 2000년 첫 직장에서부터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으니 벌써 17년 됐다. 그때는 나 혼자 생산이 아니라 사무직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다. 생산 공장에서는 생산이 제일 중요하고, 모든 것은 생산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박: 인도네시아 생활이 정말 오래되었다. 인도네시아 처음 왔을 때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나?

 

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으니, 30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했다. 솔직히 조금 지겹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한국보다 인도네시아가 편하다. 30년 전 인도네시아에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운송수단만큼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운송수단이 많았다. 인력거나 자전거를 변형해서 사람이 직접 페달을 밟아 사람도 태우고 물건도 옮겼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운송수단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 문화도 사고도 많이 바뀐 것이다. 또 30년 전에는 외국인이 가는 지역과 가지 않는 지역이 거의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우범지대를 제외하면, 외국인이 가지 못할 지역이 거의 없다.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러워졌다. 옛날에는 외국인이라면 특별한 대우도 좀 받았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박: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한국업체나 인도네시아에서 물류를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최: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업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주위에 보면 한국에서 뭔가 일이 잘 안 풀려서 그 대안으로 인도네시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 인도네시아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충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노력으로 채워 나갈 수 있는 업체들이 인도네시아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실제 오랜 시간에 걸쳐 인도네시아를 배우면서 도전한 업체들은 대부분 성공했다.

 

나 또한 인턴 및 신입사원 생활을 인도네시아에서 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열정적으로 일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열정이 너무 쉽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공장생활이 젊은 친구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배워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얻은 배움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써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물류도 사람이 한다

 

이상으로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맥주 한 잔 하고 가라는 최 부장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출고 확인하겠다고 나간 최 부장은 그 뒤로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서야 다시 나타났습니다.

 

문득, 인도네시아에서의 물류는 아직도 ‘시스템’이 아닌 ‘사람’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BT(Cross-Border Trade)와 4차 산업혁명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빅데이터가 물류에 활용된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 물류현장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물류의 기본’을 생각하게 합니다.



박상훈

인도네시아 생활 10년차. 현) 커머스 링크 대표이사.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물류, 입점대행, 마케팅, 고객지원까지 토탈 솔루션 제공.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등에서 다수의 인도네시아 관련 특강을 진행. CLO 외에도 플래텀, 트랜드워칭 등의 다수 매체에 인도네시아 관련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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