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글로벌 소싱의 민낯, '화웨이' 사태

by 설창민

2019년 10월 22일

연매출 121조 원 거대 기업 화웨이, 글로벌 소싱 제재를 대하는 자세?

제재는 '처음'이 아니다, 수많은 변수 가운데 빛나는 SCM 능력

어떻게 TSMC는 화웨이와 거래 유지 선언을? 시작된 글로벌 생존게임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지난 2019년 5월 1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음날인 5월 16일 미국 상무부는 이 명령에 따라 화웨이와 68개 자회사를 제재 리스트에 추가했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에 부품 및 소프트웨어 공급을 중단했고,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여 부품을 생산해서 납품하는 다른 나라 공급업체들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해야 할 처지다. 이미 구글은 화웨이의 안드로이드 OS, 플레이스토어, 구글 지도, G메일 사용을 차단했으며, 페이스북도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웨이 본사에 서버 서비스 팀을 상주시켜 왔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수했다. 화웨이 사태는 이렇게 막이 올랐다.

 

화웨이의 대응, 그리고 나비효과

 

화웨이의 2018년 매출은 7212억 위안, 1071억 달러로 한화 121조6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1015억 위안, 약 150억 달러를 R&D에 투자하는 거대 기업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이자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 1위지만, 이번 미국의 수출 규제로 원래 계획 대비 20% 정도 감산을 감안하고 있다고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허풍을 생각해 보면, 중국 기업이 20% 감산을 이야기 했다는 것은 실제 그 이상의 감산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따라잡는 게 목표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던 화웨이의 전략에 제대로 제동이 걸린 셈이다.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당할 화웨이가 아니다.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연초부터 구매 담당자들을 동원하여 주요 재고를 열심히 확보했고, 그 결과 3개월 분량의 자재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에 의존하지 않도록 독자 OS 개발을 진행해 왔고, 최근에는 러시아 OS 아브로라를 도입할 기세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이미 2018년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과 합작하여 ARM China를 설립했다.

▲ 러시아 OS 아브로라

 

이미 작년에 미국에서 두 손 두 발 다든 ZTE*보다 미국 의존도가 훨씬 낮고, 회사 규모가 압도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이 화웨이를 지탱하고 있다. 장기전으로 흘러갈 태세다. 오늘날의 중국을 이끌어 온 유명한 말 上有政策下有對策, ‘위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번 미국의 제재로 실물 부품을 화웨이에 공급하는 공급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 중국의 다국적 전기통신 장비 및 시스템 기업 ZTE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거래로 미국 시장 철수, 경영진 교체, 미국의 감시를 받는 조건으로 제재 해제에 합의했으나 미국 상원에서 이를 부결시킨 바 있음.

 

화웨이는 2018년 글로벌 기준 260억 달러의 반도체 칩을 구매했고, 2억 개의 패널을 구매한 전자부품 업계의 큰손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LG 디스플레이는 물론 일본의 재팬 디스플레이, 후지쯔, 소니, 파나소닉, 무라타 제작소, 미쯔비시 전기 등이 부품을 공급한다. 미국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래 골드만삭스에서 작성한 미국 공급업체 리스트를 보면 퀄컴, 인텔, AMD, 마이크론,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미국 기업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화웨이가 발표한 세계 92개 주요 공급업체 중 32개가 미국 기업이다.

▲ 화웨이에 부품을 납품하는 미국기업 명단(골드만삭스 자료 재편집)

 

그나마 거대 기업들은 화웨이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그리 크지 않겠지만, 화웨이 없으면 쓰러질만한 기업들도 제법 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네오포토닉스는 매출의 47%를 화웨이에 의존하며, 중국 선전의 부품업체 O-Film은 매출의 1/4이 화웨이 매출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화웨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보다는 중국 전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사드 배치 후 중국의 태도에 대한 학습효과다.

 

글로벌 소싱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지 20년이 흘렀다. 이제 글로벌 소싱은 너무나 당연한 구매 전략이자, 글로벌 공급망 구축의 토대가 되었다. 공급망 안에서 어느 한 기업의 위기는 전체 공급망으로 확대된다. 화웨이만 봐도 그렇다. 화웨이가 기술 독립을 위해 최후의 보루라 믿고 있는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 Hisilicon 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의 기술을 이용해서 설계하고,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TSMC의 생산라인에 제조를 위탁하고 있다. 즉 하이실리콘 - ARM – TSMC 연합을 무너뜨리면 화웨이는 곧바로 무너진다.

▲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TSMC’ Fab

 

그 가운데 ARM의 설계 기술은 미국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 민감한 시점에 ARM이 내부 직원들에게 화웨이 관계자와 기술 제공, 기술 관련 협의, 기술 문제에 대한 어떤 대화도 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접촉하면 비즈니스에 대한 모든 대화를 정중하게 거절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ARM에서도 쿨하게 인정했다. 보통 규제 위반을 처벌할 때는 규제를 따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처벌을 줄여 주기 마련이라 미리 대비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ARM의 최대 주주가 다름 아닌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인데(무려 36조 원을 주고 인수했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통신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왔지만, 미국 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여 화웨이 장비를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나비 효과의 전형이다.

 

처음도 아니잖아, 능력을 보여 봐

 

이렇게 글로벌 소싱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미국이 정치적인 의도로 경제 제재를 가하는 사례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 301조, 슈퍼 301조, 반덤핑 제소, 이란과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세이프가드, 바이 아메리카 등등. 미국은 국가 안보건, 미국 경제건 자국에 위협이 되면 가차 없이 제재를 가했지만, 제재 속에서도 어김없이 비즈니스는 이루어졌다.

 

이란에 경제 제재가 가해져서 대금 지불이 힘들 뿐이지, 지난 5월 2일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원유 중 10%는 이란에서 들여왔다.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를 제소하여 보복관세를 물게 만든 세이프가드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비자는 월풀이 아닌 더 비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선택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미국에서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제재 또한 발표하자마자 업계의 혼란을 감안하여 3개월 유예기간을 받았듯이, 규제는 적용했다고 무 자르듯 곧바로 칼같이 적용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에 앞서 사업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중국과의 거래 대상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 우리나라 또한 이란과의 원유 거래를 이어온 바 있다.

 

한마디로 이번 화웨이 제재도 지금까지 등장했던 수많은 경제 제재 중 하나일 뿐이다. CCTV 카메라 회사 하이크비전과 세계 최대의 드론 업체 DJI도 현재 화웨이만큼은 아니지만 제재 직전 단계에 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제재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비즈니스 할 방법을 찾을 것이며, 방법을 찾지 못하면 철저히 화웨이를 배제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의 이런 생각에 대하여 너무나 위험한, 낙관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인정한다. 이 법이 무서운 것은 바로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이다. 즉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연좌제로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제재 대상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은 미국 정부에 입찰할 수 없게 하며, 제재 대상 중국 기업의 자금을 받아 연구한 대학도 미국 정부 예산을 받지 못한다. 실제 화웨이와 공동으로 연구하다 이를 중단한 미국 내 대학교들도 꽤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화웨이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으면 하는 거고, 화웨이가 공백을 만들면 경쟁사가 이를 채울 터이다. 그 가운데 경쟁사의 공급업체가 단기간에 증산할 수 없다면 현재의 화웨이의 공급업체들이 공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보복하면 어떡하느냐고? 보복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기업의 사명이자 공급업체로서 살아남는 방법이고, 비즈니스의 기본이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살아남는 전략이다. 보복하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공포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산당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중국에서 비즈니스 하면서 그런 위험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경영학 원론 수업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오히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구매계약부터 개발, 생산, 물류에 이르기까지 다른 회사로 신속하게 고객사를 바꿔서 공급하는 능력, 현재의 공급업체에 대한 공급을 줄이고 다른 고객사를 발굴하여 신속하게 목표 달성 차질을 줄여 나가는 능력, 중국 현지 공장의 가동을 줄이고 다른 국가 공장의 가동을 늘리면서도 원가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 다름 아닌 공급망 관리 능력이 출중한 기업은 위기를 좀 더 빨리 헤치고 나갈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제재는 글로벌 소싱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부품을 조달하여 대량 생산한 제품에 적용하는 꽤 드문 사례다. 당연히 어떤 글로벌 기업들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이 행정명령은 1977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기초를 두는데, 2019년 기준 이란, 러시아, 중국, 예멘, 리비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북한, 레바논, 남수단, 수단, 짐바브웨, 콜롬비아 등 주로 마약이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적용되어 왔다. 요컨대 전 세계 화웨이 공급업체들의 진짜 공급망 관리 능력을 지금부터 보게 될 것이다.

(출처: thebulletin.org)

 

생존게임은 시작됐다

 

자, 이제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솔직히 요즘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궁금하지 않은가? 과연 ‘중국 기업과 거래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화웨이가 제재 대상이라면 화웨이에 팔면 안 되는 건 알겠는데, 화웨이가 아닌 제3의 업체에 판 것을 해당 업체가 추가 가공을 통해 화웨이에 납품한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뭔가 불법 냄새가 난다고? 사급이라고 해서 제3의 업체에 부품을 팔면, 이를 업체가 가공해 최종 거래선에 파는 비즈니스 형태는 글로벌 소싱에서 매우 흔하다.) 또는 화웨이가 페이퍼 컴퍼니라도 만들어 놓고 거래를 한다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이번 제재가 어떤 기준으로 적용되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저 겁주는 사람과 대안 없이 안심만 시키는 사람만 넘쳐난다. 글로벌 소싱에 근거한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을 못 준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공급망 관리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모 신문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찾았다. 제재에 따르면 전체 부가가치의 25% 이상 미국 기술이 들어가 있으면 화웨이에 팔 수 없다고 한다. 흠, 이쯤 되면 더 궁금해진다. 전체 부가가치의 25% 이상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까? 판매가격? 아니면 구매가격? 아니면 제조원가? 단순하게 보면 완제품의 자재명세서(Bill of Material, BOM)에 나와 있는 부품이 미국 것인지만 보면 되나? 만약 그 부품이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 제조업체의 에이전트를 통해 판 것이면 어떻게 알아보고 포함시켜야 할까? 그리고 그 부품의 공급업체 BOM을 뒤져서 그 부품의 부가가치 중 몇 퍼센트가 미국 기술로 만들어졌는지도 알아봐야 하는 걸까?

 

아마도 각 공급업체들은 현재 판매하는 제품과 구매하는 부품에 대한 미국기술 포함 여부와 포함 비중을 모두 마스터로 관리할 필요성도 생길 것이다.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뭔가 신고할 때 도움을 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래서 공급망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평상시 공급업체 관리 기준이 명확했고, 자재명세서를 잘 관리했다면, 이러한 추가 관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로벌 소싱 시대에는 제재에 대한 적용 방법이 정확히 정의되지 않으면 혼란만 커진다. 이러한 사정은 미국 내 공급업체들도 똑같다.

 

결론적으로 일단 현재 초강대국의 지위를 가진 미국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맞지만, 와중에도 사업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규칙을 연구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 실행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TSMC가 좋은 사례다. TSMC는 지난 5월 23일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지는 않겠다고 용감하게 언론을 통해 밝혔는데,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미국 기술의 비중이 부가가치의 25%를 넘는지 여부에 대한 진단을 이미 마쳤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사용한 부분을 포함시키지는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못했을 것이다. 계산하기도 힘들고 포함시키는 방법과 기준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 이 방법과 기준을 만드는 일은 쉬울까? 이미 말했듯이 화웨이 공급업체 중에는 미국 굴지의 IT 업체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이 기준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맘 편하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된다.

 

지금까지 미국의 규제로 인해 화웨이, 더 나아가 화웨이의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서 적어 보았다. 요즘의 공급망은 글로벌 소싱을 토대로 한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성장했다. 기업 간의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유동성을 높여 혁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역시 글로벌 소싱에선 가능한 얘기다. 이번 미국의 규제는 공교롭게도 글로벌 소싱이 얼마나 방대한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어떻게 지금까지 저개발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를 대상으로 해 왔던 경제 제재를 Global Supply Chain 전체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그럴수록 기업의 공급망 관리 역량은 더욱 더 빛을 낼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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