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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사람] 6. ‘생명은 왜 연습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내 맘대로 고찰

by 신승윤 기자

2019년 08월 18일

 

김승옥. 대한민국 문학사 희대의 천재이자, 내게는 한국문학 그 자체인 존재. 그가 62년, 대학교 2학년 때에 집필한 <생명연습>은 서울대생들 사이에서 ‘거지떼’ 중 한 명으로 취급받던 그를 단숨에 신춘문예 등단 문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외교관이 꿈이었던 이 천재는 그대로 한국 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그의 등단작 <생명연습>을 만난 것은 베란다에 방치된 아버지의 오랜 도서 모음 사이에서였다. 낡은 문학전집들은 나이를 잔뜩 집어먹은 책만이 뿜을 수 있는, 누렇게 바랜 종이 쿰내를 뿜어내고 있었고, 고등학교 1학년인 나로서는 교과서에서나 만나던 작가들이 우리집 구석에 빼곡이 나열돼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빼든 것은 이청준도, 양귀자도, 박완서도 아닌, 금박으로 쓰여진 ‘金承鈺’이란 이름이었다.

 

기이하고도 암울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담은 이 단편은 1962년에 발표돼 2006년에 나와 처음 만났다. 여드름을 덕지덕지 달고 다닌 까까머리는 당시 ‘어떻게 이런 문장이 다 있을까’라 생각하면서 오직 컬트적인 재미만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2011년이 돼서야 검게 탄 얼굴로, 여전히 까까머리였지만 짬내를 풍기며 이 <생명연습>을 다시 만났다. 유일한 낙이 독서였던 군바리는 23세가 되어서야 23세의 김승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생명은 비합리와 부조리, 자기모순 가운데 연습을 거듭해야만 생명을 달고 살아갈 수 있음을, 아니 그 과정이 숨을 가지고 존재하는 우리들의 필연이란 것임을 고요한 새벽의 지휘통제실에서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연습 없이 지조대로, 오직 한 길만 가는 자들은 이 책 속에서 모두 죽어버렸으니 김승옥은 연습부족에 가차 없다는 것이 내 해석이다.

 

2019년이 되어 다시 꺼낸 이 책은 30이 된 내게 다시 묻는다. 너는 어떤 연습 가운데 있느냐고. 답답한 마음에 지금 당장 순천으로 떠나 노인이 된 김 선생을 만나보려 해도 518은 그의 문학을, 뇌졸중은 그의 언어를 빼앗았다. 결국 나는 62년의 김승옥을 마주한 채 방구석에서 답을 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연습 가운데 있는가. 내안의 무수한 실수와 모순을 감춘 채, 오직 남들 봤을 때 한결같아 보이고 싶어 발악하고 있는가. 그럼 책 속의 ‘형’처럼 바다로 뛰어내려버릴 자신은 있는가.(나는 형 스스로의 선택이라 해석한다.)

 

사실 난 성격 파탄자에 가깝다. 극도로 예민하고, 까다로우며, 주변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기 일수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주변인들을 무지막지하게 괴롭혔는데, 부모님도 내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어하셨고, 친구들은 내 눈치를 봐주며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후에나 알았다. 본질적으로 내가 악인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그러려니 했던 것 아닐까. 스물이 되고서는 당시 정부와 싸워보겠다고 용산이며 광화문을 전전하는 등 노래하고 춤추기 바빴다. 술 처먹고 선후배들과 언쟁하고, 신자유주의가 어쩌니 개새끼 소새끼하며 동창회 분위기를 박살냈다. 내 숨의 본질이 실수와 모순, 후회인 것은 이로서 확실하다.

 

니체는 인간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입 닫고 짐을 진 채 앞만보고 걸어가는 ‘낙타’, 스스로를 구속하는 모든 것과 투쟁하며 파괴하려드는 ‘사자’,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어린 아이’. 이를 거치면 진정한 초월자, ‘오버맨쉬(overman)’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연습자로서 이 세 가지 인간은 결코 단계적 차원의 분류가 아님을 확신한다. 세 속성 모두가 내 안에 혼재돼 있어 하루하루 내 숨은 뒤죽박죽이니 나의 모순적 삶은 지금도, 그리고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도 계속될 것만 같다.

 

책을 덮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린 천재 김승옥아. 그런 너는 얼마나 잘났길래 7살이나 형인 내게 생명 운운하느냐.’ 이딴 꼰대스런 말도 23살의 김승옥은 하나의 생명연습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나는 내 주변인들의 모든 모순을 숨 쉬는 자의 당연한 실수로 이해하고 넘겨줄 자신이 있다. 물론, 지금도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내 과거의 모든 잘못과 병폐에 대해 당사자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지만. 참회하는 자세로 그들에게 사과하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고는 한다.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니 연습한 셈 칩시다’ 웃어넘길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신승윤 기자


'물류'라는 연결고리 / 제보 : ssym232@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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