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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라이프’는 계속돼야 한다, 어르신 운전면허 자진반납 체험기

by 신승윤 기자

2019년 07월 08일

고령운전자 대상 운전면허 자진반납, 지자체 마다 다른 혜택

실제 고령운전자들이 느끼는 부담, 그럼에도 반납 안 하는 이유?

'자진'반납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적성검사, 그리고 이동권 보장

 

글. 신승윤 기자

 

 

※ 해당 기사는 전국 총 8명의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간접체험 및 인터뷰를 각색한 내용입니다. 표현방식과 별개로 모든 정보는 철저히 취재 결과를 기반으로 합니다.

 

올해 나이 72세, 47년생인 나의 눈길을 최근 사로잡은 광고가 있으니 바로 ‘어르신 운전면허 자진 반납’이다. 구청에도, 주민센터에도 붙어있는 이 광고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뭐 이런 것도 있나 싶었는데, 엊그제 본 뉴스로 인해 생각이 달라졌다.

 

도로교통공단에서 조사해보니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전체 교통사고 발생 수는 2.1% 감소했지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수는 6만7000여 건에서 11만6000여 건으로 73.5%나 증가했단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니 덩달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어르신 운전자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에 따른 교통비 지원 사업’의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지원 자격은 70세 이상 노인이다. 1949년 이전에 출생한 사람 중 서울시에 주민등록 돼있는 인원에 한한다. 이들 중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해 실효처리 된 자들에게 최초 1회에 한해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제공한다. 모두에게 주는 것은 아니고, 선착순 500명에 추첨 500명 해서 총 1000명까지만 받을 수 있다.

▲ 서울시 내 구청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면허증 반납 안내 포스터

 

예전 같으면 무심히 지나칠만한 내용이지만… 최근에는 부쩍 솔깃한 제안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내 한계를 체감하고 있는 요즘, 운전면허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다. 사고율, 사망률 등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 이제 나도 ‘무엇으로 이동할까’가 아닌 ‘이동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

 

이동할 수 있을까

 

물론 저 10만 원짜리 교통카드가 갖고 싶어 반납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나 같은 노인네에게도 꽤나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 말이다. 먼저는 차량 유지비다. 은퇴 후 아파트 경비를 시작한지도 어언 10년이 다 됐다. 출‧퇴근은 시니어 패스(65세 이상 지하철 무료승차권)를 이용하니, 직접 운전할 일이 딱히 없는 지금도 적지만 꾸준히 보험료와 유류비 등이 소요된다.

 

비용문제 다음으로는 내 신체조건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시력이나 청력은 둘째 치고, 반사 신경이 예전 같지 않다. 분명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핸들을 꺾어야지 생각하면서도 곧장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더라. 슬슬 스스로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볼 일이다. 그러니 운전면허를 반납하고서 교통카드를 받으면, 그간 유료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버스를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헌데 면허를 완전히 반납해버리면 1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지방의 문중 집성촌이나, 부모님 산소에는 어찌 갈까 고민이다. 장거리를 버스로 이동해 다시 택시를 타는 등 과정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무릎이 아프다. 그렇다고 매번 자녀들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면허는 유지한 채 차량만 처분하고서 필요하면 렌트카를 이용하라는 아들의 제안도 괜찮은 것 같고…. 근데 반납 절차는 좀 간편한가?

 

반납하러 가는 길

 

알아보니 반납 접수방법은 간단하더라. 운전면허증을 지참하고서 서울시 31개 경찰서 중 하나의 교통민원실을 방문하면 된다. 도로교통공단과의 협력으로 운전면허시험장에서도 반납이 가능하다. 강남, 강서, 도봉, 서부 총 4곳의 시험장에서 반납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다. 참고로 파출소에서는 반납을 받지 않는다. 경찰서로 가야한다. 실수로 양재역 가까이 위치한 서초2 파출소에 방문했더니 한 경장께서 서초경찰서의 위치와 필요한 서류,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찾은 서초경찰서 민원실. 면허 반납을 위해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니, 관련 전담 창구로 안내해 주신다. 필요한 것은 신분증과 반납신청서. 신청서는 주어지는 양식대로 직접 정보를 채우면 된다. 이후에는 기다리는 일이 전부. 며칠 뒤 반납이 처리되면 문자를 보내주며, 교통카드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도 행정처리 후 알려준다고 한다. 혜택을 받게 되면 교통카드는 집주소로 등기우편을 통해 배달되거나, 동사무소를 찾아 직접 수령하는 방식 등이 있다.

▲ 운전면허 자진반납 신청서 양식

 

서에서 만난 사람들

 

경찰서에서 만난 박씨는 76세로 나보다 4살 누님이시다. 운전경력 30년 무사고에 빛나는 누님은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돕고자 늦은 나이에 운전을 시작하셨단다. 누님은 “내가 면허 딸 때만해도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 운전이냐’며 한 소리씩 던졌지. 그런데 정작 면허 반납할 때 되니 다 죽고 없고만!”이라며 웃어 보이셨다.

 

누님이 면허를 반납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은퇴다. 다음으로는 신체조건 악화다. 누님은 “이제 운전할 일도 없고, 한다고 해도 뭔가 불안해. 슬슬 몸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니까 운전대를 계속 잡아도 되나 싶고, 조심한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고. 해서 이번에 반납해버리고서 기회가 좋으면 교통카드도 받으려는 거지. 버스도 타고 하면 좋을 것 같아서”라 말씀하셨다.

 

한편 우리 대화에 슬그머니 참여한 72세 동갑친구 김씨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근데 그거 알어? 양천구 살면은 양천구에다가 반납하는 게 더 좋아!”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이번 어르신 운전면허 자진반납 사업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양천구는 양천구대로 진행하고 있는 특이한 모양새가 됐다.

▲ 양천구만의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반납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씨는 “서울시는 3월부터 자진반납을 받았는데, 양천구는 이미 1월부터 구민들 대상으로 시작한 거여. 거기다가 양천구는 65세부터 받아주니까 서울시 기준보다 5살 어린 사람도 반납을 받아준다 하더라고. 그리고 교통카드는 선착순 다음에 추첨으로 주는 거니께, 서울시 전체 노인네들이랑 경쟁하는 것보담 양천구 노인들끼리 경쟁하는 게 훨씬 수월하지!”라며 흥분했다.

 

지역마다 달라요

 

관련 내용을 서울시, 그리고 양천구에 확인해보니 전부 사실이었다. 모든 관련 사업은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서는 이에 적극 협력하는 형태로 함께하고 있었다. 한 서울시 관계자 또한 “아무래도 양천구민이시면 양천구에 반납하시는 게 혜택을 받기에는 유리하지 않을까요?”라 귀띔했다. 그렇다면 서울시 외에 다른 지역은 어떨까?

 

“부산은 이미 작년부터 하고 있었다 아이가!” 부산에 살고 있는 친구 장씨의 말에 따르면 부산지역에서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어르신들은 이미 5000명이 넘었다. 장씨는 “추첨해서 10만 원 교통비 지원해주는 거는 서울이랑 비슷한데, 부산은 ‘어르신 교통사랑카드’란 걸 주그든? 이 카드로 건강 관련된 거나 음식점, 목욕탕, 이발소 등등 할인 받을 수 있는 게 많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 경기도가 지난 4월 공포한 ‘경기도 교통안전 증진 일부 개정 조례’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10만 원선의 교통비 지원을 논의 중이며,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 한다. 광주시 또한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전라남도는 도와 시‧군이 사업 예산을 절반씩 충당하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대구시, 삼척시 등 전국의 도, 시, 군, 구가 각자의 환경에 맞게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도 ‘안 하는’ 이유

 

도로교통공단의 발표를 확인해보니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스스로 면허를 반납한 고령 운전자는 총 7346명이다. 지난 년도 반납자 수가 총 1만1913명이라고 하니, 한 분기 만에 이미 작년 대비 60%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홍보 및 혜택 사업이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닐까. 나만 해도 스스로의 운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30만 명에 가까운 고령 운전자들이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나처럼 반납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납 의사가 전혀 없는 이들도 있더라. 그 이유는 무엇인지 조언도 구할 겸, 함께 늙어가는 이 시대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산 친구 장씨는 아직까지 면허를 반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각종 혜택에도 말이다. 그는 “아들딸들은 다 시집장가 가서 독립했고, 집에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밖에 없다 아이가. 고향이 또 강원도니까 간간이 장거리 운전도 해야 되니 아직은 반납 못했지. 시외버스 타고서 그 까지 또 가가 택시 타고 어예 그라노, 허리 아파가.” 운전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혜택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정읍에 살고 있는 67세 김씨는 지방 도시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중교통 인프라를 반납 거부 이유로 들었다. “서울이나 부산은 지하철이라도 싸게 다니지, 여기는 차 없으면 어디 다닐 수가 없제잉. 시내버스도 뜸하게 오제, 저녁 한 9시나 10시만 되도 차 끊겨버리제, 답이 없드라고요. 거다가 나는 퇴직하고 여지꺼정 택시 몰고 있응께 면허 반납해불면 할 게 없어요.” 대중교통도 대중교통이지만 운송 또는 여객 관련 종사자나, 노후를 운전 관련 업종으로 준비한 이들에게 면허 반납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대구와 포항을 자주 오가는 70세 오씨는 “대중교통 인프라 차이도 있지만, 서울에 비하면 나름 대도시인 대구만해도 교통 혼잡이 훨씬 덜해요. 포항 같은 곳은 어떻겠어요. 우리 같은 노인들이 운전하기에는 지방 도시들이 편하고 안전하지. 도로가 넉넉하고 여유로우니까. 그런 심리적 차이도 있지 않을까요? 나이 먹고 운전하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 나도 해본 적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확실히 수도권과 지방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무엇이 반납하게 만들까?

 

‘그렇다면 무엇이 확실한 반납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 있었다. 바로 ‘적성검사’다. 면허증 갱신 및 적성검사 주기가 자꾸만 짧아져 너무 귀찮고 번거롭다는 것이다. 실제 도로교통공단은 올해부터 만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증 갱신‧적성검사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7년에서 5년, 다시 3년으로… 곧 1년으로 줄어든다는 소문도 들리니 벌써부터 미간이 구겨진다.

▲ 해를 거듭할수록 주기가 짧아지는 고령운전자 대상 면허증 갱신‧적성검사(출처: 도로교통공단)

 

서울의 김씨, 부산의 장씨 모두 입을 모으는 것이 “적성검사 주기는 계속 짧아지지, 게다가 노년 운전자가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면 검사 방식 또한 강화될 수도 있다. 그러면 굳이 운전을 하지 않는 노인들은 물론, 운전 횟수가 매우 적은 이들은 갱신이 귀찮아서라도 반납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시력검사 등만 해도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데, 굳이 매번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동의하는 것은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장씨는 “1년 다르고, 6개월 다르고,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적성검사 방식과 기준이 강화되면 운전 안 하는 사람들은 반납해서 좋고, 운전이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몸 관리도 하면서 사고예방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겠냐”고 말했다. 나도 이 나이 먹고 도로에서 폭탄취급 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운전능력이 된다는 것을 합법적으로 증명하는 게 훨씬 낫지.

 

모빌리티는 계속돼야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본다. 이동할 수 있을까. 50년을 함께한 이 면허증을 반납하고 나면, 나는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만큼 다시 오갈 수 있을까. 지방 장거리까지, 아니 과연 지방에 거주하는 입장이 되면 운전을 포기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가 깔리기 시작할 때만해도 지도책을 펼쳐 어디로 다녀볼지 신이 났었는데, 어느새 운전을 포기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할 나이가 됐다. 포기한 만큼 보장받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그저 늙은이의 욕심일까. 서울서는 카풀이네, 타다네 난리인데 지방 친구들은 이런 걸 죽기 전에 타볼 수나 있을런지. 또 다시 고민에 빠진다.



신승윤 기자


'물류'라는 연결고리 / 제보 : ssym232@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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