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신선한 달걀, 우유는 어떤 맛? '초신선'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IT를 활용한 물류‧유통의 변화,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다
글. CLO 신승윤 기자
Idea in Brief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터무니없는 이야기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우선 상상 속 세상과 전혀 다른 현실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고, 불가능한 것은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 낳은 달걀을 저녁식사로 먹는다면? 오늘 착유한 우유를 바로 파는 곳이 있다면? 이 같은 식재료에 관한 사소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 이들이 있다. IT를 기반으로 불가능을 극복해 식재료 생산자와 소비자를 곧장 연결하려는 이들. 정육각의 초신선 달걀, 초신선 우유를 직접 만나봤다.
상상을 현실로
2013년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그 제목이나 포스터가 보여주는 것만큼 거창한 영화가 아니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 상상만이 유일한 취미이자 일탈인 주인공 월터 미티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퇴직을 맞이한 중년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매번 상상을 일상의 도피로만 사용한 그가 행동하기 시작하니,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한다. 물론 여느 판타지 영화처럼 하늘을 날거나,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저 눈앞에 닥친 위기와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자 그의 상상은 현실로, 화려하거나 극적이지도 않은 그저 일상으로 변화한다.
여기 상상을 현실로, 우리 일상으로 만들고자하는 이들이 있다. 푸드테크 기업 ‘정육각’은 시중의 달걀, 우유가 긴 시간 이곳저곳을 떠돌다 소비자에게 도착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오늘 낳은 달걀을 바로 먹을 수 있다면, 오늘 착유한 우유를 바로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곧바로 행동에 돌입한다. 가장 신선한 달걀과 우유를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말이다.
정육각의 주력 상품은 육류다. ‘초신선육’이란 이름으로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에 도축일을 표기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는 돼지고기 기준 도축 후 7~45일이 소요된 기존 유통 방식을 1~4일로 개선해 탄생한 제품이다. 가장 신선한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정육각의 철학에 따라 육가공 및 유통 프로세스에 IT를 접목한 결과다.
정육각은 육류에 그치지 않고 달걀, 우유 또한 초신선 식품으로 탈바꿈하기로 마음먹는다. 달걀과 우유 또한 엄연한 신선식품이니, 갓 생산한 제품이 가장 맛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였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당일 생산한 달걀, 우유가 가장 맛있으며, 식품영양에 있어서도 가장 우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며 “실제 먹어보니 다르더라. 맛의 차이가 확연이 느껴졌기에 제품 기획으로 이어진 것”이라 말했다.
▲ 달걀의 산란일, 우유의 착유일을 확인할 수 있는 정육각 홈페이지
무엇이 상상을 방해하나
그러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육류가 그러했듯, 달걀과 우유를 초신선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내놓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았다. 제품의 생산과 가공, 관리, 유통까지 물류 전반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 중에서도 정육각이 주목한 것은 달걀과 우유의 복잡한 유통과정이다. 싣고 나르기를 반복하면서 식품의 신선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각종 마진이 붙으면서 제품가격은 오히려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정육각은 이를 IT로 해결하고자 한다.
김 대표는 “우유만 봐도 원유를 모으고 나르는 배송업자, 탱크로리에 우유를 보관하는 업자, 납품업자, 가공업자 등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며 “때문에 착유일이 아닌, 제조일을 기록하는 우유는 2~3일을 묵어도 소비자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달걀도 수거 후 GP(Grading and packing)센터라 불리는 달걀집하장을 거쳐 판매에 이르기까지 2~3일의 시간이 걸린다. 이를 해결하여 적기적지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초신선의 본질”이라 말했다.
소비자 판단에 의해 더 신선하고, 더 건강한 식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장. 소비자 중심에서 다양한 식품 선택의 폭을 보장하는 시장. 이를 위해 정육각은 당일 산란 달걀, 당일 착유 우유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최단기간에 연결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각종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기존 시장 구조를 파악하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연구한 결과, 두 가지 포인트를 찾아냈다. 첫째는 ‘농장 선별’, 둘째는 ‘생산‧유통 라인 구축’이다.
상상은 발로 뛰어야 현실이 된다
정육각이 초신선 달걀을 판매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진행한 일은 바로 농장 선별이다. 단순히 오늘 낳은 달걀이라고 해서 품질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닭은 죽을 때까지 달걀을 낳고, 노계의 달걀은 품질이 떨어진다. 또한 철장 등 가혹한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은 달걀 안에 빨간 점 같은 흔적이 남으며, 어떤 닭들은 초란 생산을 위해 몇 주씩 굶어야 한다. 이처럼 관리 받지 못한 닭들이 낳은 달걀은 노른자 탄력이 떨어지며, 껍데기가 얇아지는 등 품질이 저하된다.
정육각은 팔도를 유랑하며 최고의 달걀을 생산하는 농장을 찾아다녔다. 초신선은 고품질의 달걀에만 의미 있는 수식어기 때문이다. 하여 닭의 복지(?)를 보장함과 동시에 농장 운영과 제품생산에 있어 수직계열화가 가능한 농장을 최우선으로 선별한다. 축산은 그 유통 과정만큼 생산 과정이 복잡하다. 닭 종자 관리, 사료, 항생제, 사육, 관리와 프로세싱 등 과정이 다양하다보니 대부분의 농장에서 각 과정을 외주화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어떤 사료 업체는 사료의 영양성분보다 노른자 색깔을 진하게 만들기 위한 물질첨가에 집중한다”며 “이처럼 농장 운영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외주화 하다보면 고품질의 달걀 생산이 어렵다. 때문에 이를 수직계열화 해 운영하는 농장과 거래한다. 수직계열화에 있어 자체 GP의 소유와 운영도 포함된다. 여러 농가의 달걀이 모이는 외부 GP로 이동하면, 당일 산란 달걀을 절대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러다보니 정육각의 초신선 달걀은 자연스럽게 무항생제 제품이며,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살충제 달걀’ 파동 이전부터 산란일자를 표기해 판매하고 있었다 한다. 2019년부터 산란일자 의무 표기가 법제화 되면서 여전히 찬반논란이 있으나 정육각은 이로부터 자유롭다. 이미 포장박스에 산란일이 명시돼 있음은 물론, 달걀 각각의 난각에 표기된 산란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선별된 농장으로부터 달걀과 원유를 제공받은 뒤, 정육각은 자체 구축한 생산‧유통 라인을 통해 제품을 완성한다. 초신선 우유는 농가로부터 들여온 원유를 정육각에서 직접 살균해 만드는 제품이다. 저온살균 설비를 구축해 당일 착유한 원유를 곧바로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유통 단계를 최소화하고, 판매량을 예측해 신선도에 있어 최적의 제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착유일이 일정하게 정해져있으며, 당일배송의 경우 주문마감시간이 존재한다.
▲ 정육각은 원유 살균 설비를 직접 보유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출처 : 정육각)
같은 상상을 함께 하도록 만들다
농장도 선별하고, 생산‧유통라인도 구축했으나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다. 농장을 설득해야 한다. 설득이란 표현이 다소 의아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다. 축산, 그 중에서도 달걀과 우유는 유독 생산자가 무력하다. 왜냐하면 생산자가 생산일, 생산량을 원하는 때에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닭과 젖소에게 ‘오늘은 안 되니 내일쯤 일하자(?)’고 설득할 수 없다. 일정한 생산량이 반복되고, 재고는 곧 비용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을 아는 유통업자들은 생산자를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독점 거래를 강요하거나, 단가를 후려치고, 어음 거래를 요구하기도 한다. 갑질 또는 횡포의 종착점에 생산자, 즉 농장주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농장주들에게는 정육각 같은 새로운 거래 파트너를 만난다는 자체가 눈치 보일 일이다. 까딱하다 대형 유통사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최악의 경우 기존 거래가 끊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육각은 농장주들과 함께 상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상상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상상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했던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시장, 우수한 품질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 그 과정에서 절약한 물류‧유통 비용이 거래 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지금보다 다양한 판매채널을 확보해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는 때가 온다면. 이에 조심스레 손을 내민 농장주들과 정육각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김 대표는 “농장주들과 정육각은 신뢰관계로 뭉쳐있다”며 “농장주들에게 하도 정직, 신뢰를 강조하다보니 어떤 농가에서는 달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닭에게 ‘여기가 알 낳는 곳이야’ 가르칠 수 없지 않은가. 때문에 곳곳을 돌아다니며 알을 낳는데, 이를 아무리 꼼꼼히 찾는다 해도 다음날 또는 그 이후 발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까지 감추지 않고 터놓은 채, 함께 고민할 정도로 서로 신뢰하고 있다. 이는 한 번 깨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고, 소비자들에게도 버림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앞으로도 각별히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과연 맛은 상상 이상일까
초신선 달걀, 초신선 우유, 직접 주문해봤다. 오직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이기에, 정육각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을 진행했다. 주문 전에 달걀은 산란일자를, 우유는 착유일자를 사전 확인할 수 있도록 표기하고 있다. 더불어 배송지역별 제품을 받을 수 있는 날짜, 당일 산란 및 착유된 제품을 같은 날 저녁에 받을 수 있는 ‘당일 배송’ 가능 일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주문을 통해 당일 저녁 7시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박스 포장 내부에는 먼저 보냉재로 이뤄진 전용 봉투가 들어있다. 봉투 안에는 우유와 함께 박스에 든 달걀이 함께 포장돼 있다. 여러 개의 아이스팩 또한 신선도 유지를 위해 동봉된 상태였다. 정육각을 상징하는 로고와 검은색을 활용한 인상적이었으며, 스티로폼을 활용해 알알이 포장한 달걀이 독특했다.
▲ 특유의 포장방식이 인상 깊은 초신선 달걀과 우유
달걀은 날 것, 그리고 프라이 두 가지로 방법으로 시식해봤다. 우선 노른자와 흰자가 말 그대로 ‘탱글탱글’하다. 날 것으로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도 노른자가 쉽사리 터지지 않았고, 프라이팬에 올렸을 때 퍼지는 것이 아니라 동그랗게 뭉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비린내가 없다. 날달걀에서 조차 비린내 없이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우유의 경우 고소함과 더불어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유를 마시고 나면 입안에 남는 텁텁함, 또는 찝찝함이 전혀 없었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 식재료의 신속한 배송은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육각의 상상은 사소하면서도 특별하다. 그리고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냄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식재료의 온디맨드 시대. IT 기반 푸드테크 기업이 상상을 현실로, 기존 물류‧유통 구조를 깨는 새로운 시도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