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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연결을 위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

by 김동준 기자

2018년 04월 09일

키오스크, 무인매장 등 유통가에 불어오는 ‘언택트(Un+Contact) 바람’

사회·구조적 필연성이 가져온 언택트…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

 

Idea in Brief

언제부터였을까. 어떤 가게를 들어가더라도 상품 안내를 위해 다가오는 점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 생각 없는데’, ‘이것만 사면되는데’, ‘귀찮은데’… 상황에 따라 이유는 다양했다. 언택트란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Contact)이 사라진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이미 B2C 사업을 주된 수익원으로 삼는 유통업계에서는 언택트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 언택트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을까. 언택트가 트렌드로 대두된 배경과 앞으로 언택트가 가져올 다양한 변화 양상을 추론해본다.

 

#1 이니스프리 매장을 가면 두 가지 종류의 바구니가 놓여 있다. 한쪽은 ‘도움이 필요해요’, 또 한쪽은 ‘혼자 볼게요’ 표지판이 붙어있다.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를 들고 다니면 매장 직원들이 상품 설명을 위해 다가온다. 직원들은 고객이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기도, 혹은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반면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들고 다니면 고객은 상품을 고를 때부터 계산대 앞에 서기 전까지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쇼핑을 할 수 있다.

 

#2 버거킹 매장을 방문했다. 점원이 있는 카운터 대신 설치된 것은 키오스크. 면대면 주문이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주문은 기계가 맡는다.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음료와 사이드메뉴를 변경한다. 결제도 키오스크에서 이뤄진다. 카드를 넣고 화면에 뜨는 서명란에 서명하면 결제가 진행된다. 키오스크에서 나온 대기표와 영수증을 들고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3 인터넷에서 원하는 상품을 주문했다. 배송까지는 하루가 걸린다는 안내메시지가 카카오톡을 통해 날아온다. 배송 예정 시간은 오후 1시. 회사에 있을 시간이지만 택배를 받지 못할 걱정은 없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무인 택배함에 보관해달라고 주문 시 요청사항 란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무인 택배함을 찾아 문자로 전송된 택배함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덜컹’, 택배함 문이 열린다.

 

#4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했다가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반품을 신청하려고 한다. 반품 절차에 대해 묻고 싶지만 고객센터와 일일이 전화하는 게 번거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쇼핑몰에서 운영중인 챗봇(Chat-Bot) 서비스. 챗봇을 통해 반품 절차에 대한 안내를 받고 절차대로 반품을 진행한다.

 

 

언택트에 대한 사회적 고찰

 

최근 사회적으로 언택트(Untact, Un+Contact)에 기반한 다양한 현상이 늘고 있다. 언택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접촉의 ‘자발적인’ 단절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기성세대와 달리 작금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언택트라는 경향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언택트의 씨앗이 사회라는 토양에 심어졌을까. 이를 유추하기 위해선 2030세대가 겪어온 삶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1989년 출생한 김 씨는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뜻하는 말로, 청소년 시절부터 인터넷과 모바일, SNS 등에 익숙한 것이 특징이다.

 

2018년, 정확히 30살이 된 김 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양한 형태의 경제위기를 체감했다. 김 씨가 겪은 최초의 경제위기는 90년대 후반 발생한 IMF 외환위기다. 당시 수많은 경제 주체들은 몰락을 길을 걸었다. 절대 망하지 않을 줄 알았던 대기업들이 줄도산했고, 가정에서는 직장을 잃은 가장의 신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밀레니얼 세대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에 노출됐다. 승리를 통한 쟁취,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s All)’이라는 명제를 자연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놓였다.

 

▲이니스프리 매장 안. ‘도움이 필요해요’와 ‘혼자 볼게요’ 바구니가 나란히 놓여 있다. 직원으로부터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 싶은 고객은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즐기면 된다.

 

뿐만 아니라 2007년 촉발된 국제적인 금융위기와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는 경기침체 양상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큰 영향을 줬다.

 

올해 초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국내 10대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Z세대(1995년부터 2005년 사이 출생한 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 것이 ‘가치중심적 소비’ 성향이다. 경기침체와 취업난에 익숙해진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보다 현재의 삶을 중시하게 된다는 게 가치중심적 소비를 설명하는 주요 골자다. 즉, 시간과 자원의 배분, 직업 선택 등 다양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개인과 현재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문화가 Z세대를 중심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지금의 2030세대는 개인주의에 익숙해졌다. 누군가와의 협력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가 사고의 중심축을 담당하게 됐다. 마치 영국의 철학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라고 봤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곧 남보다는 나를 믿는 소비 트렌드를 만들었다.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게 됐다. 정보를 전달하려는 제 3자의 개입은 불필요해져버렸다. 언택트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유다.

 

언택트에 대한 구조적 고찰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언택트 기술의 수용 배경으로 ‘비용절감’, ‘즉각적 만족’, ‘풍부한 정보’,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꼽았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모든 요소는 기술의 발달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비용절감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저렴한 가격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공급자는 우선적으로 맞춰야 한다. 이 때 고민이 되는 부분은 당연히 비용적 측면이다. 인건비와 지리적 제약 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급자는 필연적으로 언택트 기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기술적인 발달도 언택트가 받아들여지는 이유라는 게 김난도 교수의 설명이다. 소비행위의 물리적 제약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는 즉각적 만족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소비자의 참을성은 점차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즉,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언택트는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풍부한 정보도 언택트와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품의 질적인 부분에 있어 불확실성을 안고 소비를 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제품의 세세한 측면을 전문적으로 리뷰잉 해볼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은 변화하고 있는 검색 생태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구글의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지난해 12월, 74.9%)가 국내 검색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치고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 영상을 통한 체감형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피로감 역시 언택트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7명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업무에 시달린다고 한다. 2015년 실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0%는 “업무 시간 외에 스마트폰으로 업무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모든 사람이 연결된 사회에서 자아를 찾기란 힘든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모두와 연결된 사회에서 불필요한 면대면 접촉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하고 있다. 굳이 점원과 마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 주문을 넣을 수 있다.

 

결국 언택트는 필연처럼 다가온다. 최근 대다수 언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각종 업계의 언택트 마케팅을 부추기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상 언택트는 기술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언택트를 가속화하는 기술적 요소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화두가 되기 전부터 심도있게 논의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연결을 위한 언택트

 

그렇다면 언택트는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앞서 말한 것처럼 언택트는 기술의 발달에 기인한다. 로봇이 창고를 정리하고, 무인 자동차가 수송을 담당하게 될 물류업계에서도 언택트는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언택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수적으로 여겨져 온 관계의 종말을 가져올까. 대답은 ‘아니오’다.

 

사실 언택트가 기반으로 삼는 다양한 기술은 연결이라는 대명제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터넷, 온라인 메신저, SNS 등은 모두 연결을 통한 가치를 창출한다. 커넥티드 카의 기술적 근간인 사물인터넷(IoT)이라는 개념도 모든 사물을 연결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효율성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결의 시대에서 굳이 면대면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계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접촉양상의 변화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언택트가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택트는 연결될 권리를 갖지 못했던 다양한 계층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빠른 배송 서비스를 누리지 못했던 소비자에게 있어 드론 배송은 포괄적 개념의 언택트 기술을 바탕으로 한계를 극복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김난도 교수도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언택트는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면에 언택트라는 기술이 들어간 만큼 소비의 과정에서 적절한 시점에 섬세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언택트의 특성상 언제 어느 시점에 컨택트하고, 어떻게 언택트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사람

 

하지만 걱정도 있다. 언택트라는 흐름에서 부득이하게 이탈하게 될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택트는 무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무인화는 결국 일자리를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다수 기업이 무인화를 추진하는 이유가 인원감축과 생산성 향상에 있다는 점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크게 하는 요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일자리 대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언택트는 머나먼 이야기일 수 있다. 저소득계층의 경우 기술을 체감하기 위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 장애인 역시 물리적인 제약으로 언택트를 체감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물론 공급자 입장에서의 노력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최근 장애인들을 위한 키오스크를 마련한 맥도날드가 좋은 예다. 키오스크 화면에 장애인을 위한 버튼을 생성하고, 버튼을 누르면 휠체어 눈높이에 맞춰 화면이 축소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언택트에 대한 우려가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 언택트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언택트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모두가 대비해야하는 소요가 커진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김동준 기자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정치부/산업부 기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CLO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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