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치픽스", 알고리즘 기반으로 고객 맞춤 패션 스타일 추천
확보한 데이터는 '수요예측', '재고관리', ‘생산’ 영역까지 활용
글.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온라인 패션몰이라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품노출’ 페이지 하나 없이 2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은 패션업체가 있다. 이 업체가 집중한 것은 패션의 본질이라 불리는 디자인이 아닌 알고리즘이었다. 상품추천 기능을 넘어서 물류, 생산까지... 모든 공급망 프로세스 안에 데이터를 적용시키고 있는 패션 아닌 알고리즘기업 스티치픽스의 도전을 살펴봤다.
지난해 11월 스티치픽스(Stitch Fix)라는 온라인 패션 유통 스타트업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면서 업계의 이목이 몰렸습니다. 스티치픽스는 스탠포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가 2011년 창업한 업체입니다.
스티치픽스는 창업 후 4년만인 2015년 연매출 1억 5천만 달러, 2016년 7억 3천만 달러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기업공개 후 3개월이 지난 2018년 1월 시점 스티치픽스의 기업가치는 20억 달러를 넘었고, 2017년 매출은 1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상품 페이지 없는 패션몰
그런데 패션유통 분야에서 떠오르는 이 업체의 웹페이지에는 단 1개의 상품판매 안내 페이지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패션 쇼핑몰이 웹페이지에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세련된 사진과 설명을 올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것을 봤을 때 매우 이례적입니다.
더욱이 스티치픽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상품판매 페이지 하나 없는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고 합니다. 스티치픽스는 오직 스타일리스트의 추천을 통해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을 적용합니다. 스티치픽스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Your Online Personal Stylist(당신만을 위한 온라인 스타일리스트)”라고 자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말 그대로의 B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증가 추세에 있는 스티치 픽스의 당기 순이익
고객 입장에서 스티치픽스 상품 구매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스티치픽스에 가입한 고객은 최초 가입시 스타일프로필(Style Profile)이라는 설문을 작성하게 됩니다.
단계별로 구성된 설문에서 고객은 먼저 자신의 신체 사이즈와 직업군과 같은 정보를 기입합니다. 이후 선호하는 핏(슬림핏, 스트레이트, 루즈핏 등)과 주어진 다양한 패션 코디 조합에 대한 선호도를 체크합니다. 그리고 바지에서 상의에 이르는 각각의 의류 유형별 희망구매 가격 범위를 설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등 스타일리스트가 참고할만한 자신의 소셜미디어 정보를 추가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스타일프로필 작성을 완료한 후 고객은 상품을 배송 받는 시간 간격을 설정하고 주소와 결제 정보를 입력합니다. 이후 고객이 설정한 주기마다 스티치픽스에 소속된 스타일리스트들의 추천을 통해 5개의 상품을 배송 받게 되는데, 이를 ‘픽스(Fix)’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픽스에 5개의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데, 고객은 마음에 드는 상품은 구매하고 나머지 상품은 사이즈를 교환하거나 반품할 수 있습니다. 5개 상품을 모두 구매할 경우 25%의 추가 할인이 적용되고, 하나라도 구매할 경우 20달러의 스타일 추천 비용은 면제됩니다.
▲ 스티치픽스의 홈페이지에는 상품 리스트가 없다
핵심은 추천, 무엇이 고객을 이끄는가
스티치픽스는 상품판매 페이지를 없애며 온라인 유통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불리는 오프라인 대비 폭넓은 제품 노출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스티치픽스가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넘쳐나는 제품 사진과 설명을 보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객의 니즈였습니다.
레이크는 고객이 지치기 전 가장 적합한 제품을 안내하고 추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쇼핑몰 홈페이지에서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제품 정보를 밀어내는(Push) 방식이 아니라 개별 고객의 선호도를 분석하여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을 제공하는(Pull) 방식으로 승부를 걸게 됩니다.
따라서 스티치픽스 성공의 핵심은 고객들이 선호할만한 상품을 얼마나 정확하게 추천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스티치픽스 고객의 3개월 유지율(최초 가입 후 3개월 동안 서비스를 지속 이용하는 비율)은 45~50%를 상회하고 12개월 유지율 역시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티치픽스는 정확한 상품 추천을 위하여 풀타임 및 파트타임 스타일리스트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2011년 창업 후 4년만인 2015년 자체 스타일리스트는 1,000명 수준이었지만, 2016년 2,800명, 기업 공개 직전인 2017년 10월에는 3,500명의 스타일리스트를 통해 고객에게 제품을 추천하고 배송했습니다.
▲ 고객은 자신이 선호하는 패션코디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사진=스티치픽스 홈페이지 캡쳐)
알고리즘이 스타일을 만든다
만약 스티치픽스가 이들 스타일리스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상품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전통적인 기업과 완전히 차별화된 기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매출이 증가하는 만큼 스타일리스트를 더 고용해야 할 것이고, 고객 증가에 따른 변동성을 고려할 경우 스타일리스트 고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매출 성장세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명의 스타일리스트가 광범위한 패션 카탈로그에서 자신의 고객에게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고객을 자세히 분석하고, 상품 검색 및 탐색을 거쳐 추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자연히 매출 성장 대비 비용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스티치픽스의 놀라운 비즈니스 모델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크는 훌륭한 안목을 가진 스타일리스트 확보만큼 중요한 것이 스타일리스트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자체 추천 시스템 구축’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창업 후 1년 뒤인 2012년,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Netflix)로부터 에릭 콜슨(Eric Colson)을 스카우트하게 됩니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비디오 추천 알고리즘을 가진 회사로 유명합니다. 이런 넷플릭스에서 스카우트된 콜슨은 스티치픽스를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스티치픽스의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은 각각의 고객이 작성한 스타일 프로필에 따라 가장 적합한 상품 그룹을 계절별, 시기별로 스타일리스트에게 추천합니다. 스타일리스트는 고객별로 추천된 후보 그룹에서 가장 적합한 5개의 상품을 골라 최종 추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콜슨이 설계한 알고리즘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들은 투입 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 추천이 가능해졌고, 대부분의 시간을 각각의 고객과 소통하는데 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스티치 픽스의 12개월 재구매율 비율
추천을 넘어 물류, 생산까지
스티치픽스는 사업 초기부터 상품 디자인이나 생산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나와 있는 다양한 상품에서 고객에게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200개 이상의 브랜드와 협력하여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고 이를 고객에게 배송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상품을 고르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스티치픽스에서 정해진 시기에 추천하는 정기배송 방식의 유통 프로세스이기에 수요예측에서 재고관리, 배송관리가 상당히 효율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추천한 제품을 고객이 반품할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매출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반품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반품은 필연적으로 물류창고 내 재고 관리에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레이크에 따르면 기업공개 전까지 스티치픽스가 투자받은 투자금은 대부분 상품 구매 및 재고, 반품 관리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스티치픽스는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을 전사적으로 확대 적용하여 최적화하는데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치픽스의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고객이 스타일 프로필을 작성하고 나면 고객이 설정한 시간 간격마다 상품 추천 프로세스가 시작됩니다. 먼저 스티치픽스가 확보한 상품 중 고객에게 추천 가능한 상품을 필터링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미 한번 추천되었거나 고객이 선호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상품들을 제외한 후 해당 고객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고객들이 선택한 과거 상품 선택 이력 데이터를 활용하여 각각의 상품에 대한 고객 선택 확률을 계산합니다.(이를 콜라보레이팅 필터링이라 부릅니다.) 고객이 늘어날수록 상품 추천의 정확도가 올라가는 특성이 있기에 회사가 성장할수록 더 의미 있는 추천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콜라보레이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 알고리즘은 각각의 고객을 미리 유형화된 고객 그룹에 연결함에 따라 개별 고객의 세세한 선호도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은 스타일프로필을 미리 작성할 뿐 아니라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사진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개별 고객의 세세한 특성을 반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좋아요’를 누른 사진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티치픽스는 일단 자체적으로 보유한 상품 재고에서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후보 상품 리스트를 작성하고, 해당 후보 상품 리스트를 스타일리스트에게 제공합니다. 고객의 세세한 특성을 반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해당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스타일리스트를 선택하는데도 알고리즘이 적용됩니다. 이때 적용되는 것은 스타일리스트와 고객의 스타일 선호도 일치 여부입니다. 고객에 맞는 스타일리스트가 선택되고 나면 스타일리스트는 고객 선호도 정보, 과거상품 구매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최종 5개의 상품 선택에 활용하게 됩니다. 이후 물류창고의 상품 선택에서 배송 차량 결정에 이르는 물류 프로세스 전반에도 알고리즘은 적용됩니다.
스티치픽스의 알고리즘은 ‘생산’ 영역까지 확대,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스티치픽스가 자체 생산 설비나 디자이너를 보유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품 추천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은 패션 디자인에 활용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선택한 상품들을 개별 디자인 요소별로 분해하여 선호도 정보로 저장하고,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설계하는데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용 블라우스를 디자인할 경우 기본 디자인 선택 후 개별 디자인 요소별로 조합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그러면서도 고객이 선호할 만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조합 가능한 블라우스 디자인은 30조 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블라우스 디자인은 백만 개 수준이라고 하니, 향후 알고리즘이 새롭게 설계하는 패션이 가져올 파급력은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스티치픽스의 성공은 다른 패션 브랜드들에게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스포츠 패션 분야 강자 중 하나인 언더아머(Under Armour)는 스티치픽스와 매우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스티치픽스와 달리 스타일링 비용을 전혀 받지 않고 회원가입 후 미리 설정한 간격(30일, 60일, 90일 중 선택)마다 4개에서 6개의 상품을 배송합니다. 고객은 해당 상품을 모두 다 구매할 경우 20%의 추가할인, 전혀 구매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페널티 없이 상품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아마존은 프라임 멤버십 가입 고객에게 프라임 워드로브(Prime Wardrobe)라는 새로운 형태의 의류 판매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아마존프라임 고객은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패션 상품을 고른 후 무료로 배송 받고 무료로 반품할 수 있습니다. 정교한 추천이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다양한 상품을 공짜로 배송하고 손쉽게 반품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무료배송 및 무료반품 서비스로 구매 전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프라임워드로브' 서비스
결국 데이터
그러나 상품 재고를 미리 확보하고, 반품된 제품을 다시 판매하기 위한 과정들, 이 과정에서 판매되지 못하고 악성 재고로 남는 상품 관리가 불가능할 경우 수익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고객에게 상품을 제때 배송하기 위해 스티치픽스는 물류창고를 미국 전역에 확보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물류창고에는 수많은 상품들이 새롭게 주문되어 입고되거나 고객으로부터 반품되어 재입고 됩니다. 정확한 수요예측 및 적정재고 관리는 스티치픽스 수익성 확보의 핵심 열쇠입니다. 수요예측에 따라 미리 확보한 재고가 제때 판매되지 않거나 반품되어 재입고된 재고 처리 부분은 스티치픽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문제를 푸는 해답도 ‘데이터’에 있습니다. 최근 필자는 다양한 연구과제들에서 최적화 알고리즘과 기계학습,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해봤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보다 폭넓고 대량으로 확보 가능한 데이터들이 최적화 알고리즘과 기계학습의 품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경망 네트워크(Neural Network)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던 딥러닝 기법을 성공하게 만든 것도, 복잡도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던 최적화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린 것도, 모두 데이터와 패턴의 확보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미래 제조와 유통을 결정짓는 핵심열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패션의 완성은 디자인이 아니라 알고리즘이라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홈플러스그룹, POSCO, CJ대한통운, 현대엠앤소프트 등 제조, 유통, 물류 분야의 기업들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였고, 삼성전자, LG전자, CJ제일제당,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생산성본부, 국군수송사령부 등과 함께 SCM 및 물류혁신 관련 교육을 진행하였다. Marquis Who's Who, IBC 등 인명사전 등재 및 논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관심분야는 SCM 최적화, 물류 및 유통 혁신, 위치 기반 서비스 및 네비게이션 최적화 등이 있다.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