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자동차가 아닌 이동에서 그들의 가치를 찾다
토요타의 이팔렛 플랫폼, 공급 중심의 자동차산업을 '수요 중심'으로
자동차 기업의 본질은 자동차(?)... 근시안적 사고 버려야
글.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
불가능을 시작하라(Start your impossible).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로 의역되는 이 문장은 지난해 토요타가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후원하며 내세운 광고 캠페인의 표어다. 이 광고를 보면 마치 토요타가 ‘헬스케어’ 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수년간 토요타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각종 AI 기반 로봇 연구개발 성과를 보였던 것도 기억난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서 토요타가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방향성 없이 별 짓을 다하다가 결국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토요타의 광고 캠페인 영상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불가능을 시작하라’라는 표어를 토요타의 존재 이유인 자동차 산업과 연관해 유추해봤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동차는 어디든 가게해줄 수 있는 이동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로 못가는 곳도 존재한다. 꼭 이것을 기존 자동차로 가야할까.
이 의문의 연쇄의 답을 찾는 과정에 ‘불가능을 시작하라’라는 표어가 있다. 토요타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모빌리티(Mobility for All)이며, 광고 안에서도 그것을 부단히 강조하고 있다.
토요타는 캠페인 홈페이지에서 자사의 미션을 ‘모든 사람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는 것’이라 명기하고 있다.(사진: mobilityforall.com)
토요타는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아니다. 모빌리티 회사다. 회사의 표면적 존재 이유인 ‘자동차’가 아닌 좀 더 깊은 근원인 이동(Mobility)에서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다. 무엇을(What), 어떻게(How)에 집중하지 않고 왜(Why)에서 그들의 가치를 찾았다. 실제 토요타의 캠페인 영상에는 ‘이동의 자유를 얻을 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When we’re free to move, anything is possible)’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토요타는 운전자조차 필요 없어진 상황에 사람들은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런 고민이 기존 자동차만으로 불가능했던 영역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자동차가 아닌 ‘이동’이라는 경험을 어떻게 풍족하게 할 것인가. 이것이 토요타의 고민이다.
이런 배경 하에 올해 CES2018에서 선보인 것이 토요타의 모빌리티 플랫폼 이팔렛(e-Palette)이라 여겨진다. 이팔렛은 이동수단이 되기도, 배송수단이 되기도, 사무실이 되기도, 판매공간이 되기도, 숙소가 되기도, 음식점이 되기도 한다. 생활접점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개별고객의 욕구를 채워준다. 이팔렛은 자율주행과 초연결, AI와 블록체인 기술까지 총망라된 종합 생활 플랫폼이 될 것으로 평가 받으며, 이번 CES의 최고 이슈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팔렛은 고객니즈에 맞춰 자유롭게 변화하는 온디맨드 플랫폼이다.(자료: 토요타)
최근 토요타의 행보를 보면 스타트업 경영기법을 내재화시키는 데 상당히 성공했다고 보이기도 한다. 만약 필자의 상상이 맞다면 이팔렛은 이동이라는 고객 욕구를 채우기 위한 여러 실험을 통해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찾아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토요타는 일찍부터 우버, 디디추싱 등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팔렛이 방향성 없이 잡다한 재료를 다 넣고 끓인 잡탕밥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간 자동차 산업은 공급자 중심으로 수요를 이끌었다. 기업은 하나의 팔레트(Palette)에 준비된 많은 물감으로 여러 그림을 그렸고, 고객은 그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 즉, 회사가 정해준 여러 자동차 모델 중에서 고객은 구매했다. 이팔렛과 같은 시도는 이러한 기존 생태계를 수요 중심으로 격변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고객 민주화(Customer Democratization)의 시대를 보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토요타가 ‘전기차냐, 수소차냐’와 같은 논쟁에 섣불리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짐작 가능하다. 사람의 이동 욕구 충족을 위한 모든 문제 해결이 토요타의 존재 이유라면 자동차가 전기차인지, 수소차인지는 그 다음 해결할 국지성 이슈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최근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업계의 한 고위임원이 “자동차 기업의 본질은 자동차”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만 봤을 때 한국의 자동차기업은 아직도 ‘고객은 자동차를 타기 위해 자동차를 산다’는 뻔한 현상에 매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원가, 품질, 디자인, 성능... 그것을 넘어선 초월적인 세계는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토요타의 원가관리 정신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바뀌었나 생각해보자. 마른 걸레를 찢어질 때까지 짜고, 찢어지면 버리고 다시 찢을 걸레를 찾았다. 토요타의 원가관리는 한국에 와서 ‘원가고문’ 정신으로 승화됐다. 이 정신으로 팍스콘과 대결을 벌이며 토요타와 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어찌 보면 대단하다. 이제 토요타의 모빌리티 중심의 철학과 스타트업 정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업 정신으로 승화될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를 놀라게 할지 궁금해진다.
끝으로 배가 잔뜩 부르지만,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환상적인 양념치킨을 하나 소개한다. 포드의 모빌리티 VR 영상이다.
앰플러스파트너스(주) 대표이사 및 인하대 겸임교수. 넥스트벤쳐투자, 삼성전자, 3M, LG전자 등에서 연구개발, 기술마케팅 및 영업, Corporation Venture Capital, Venture Capital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 창진특(톈진)전자유한공사 등에서 창업 및 사업을 하였다. 구글캠퍼스, 국민대, 서강대, 서울대, 유니스트, 한양대 등에서 기업가정신 및 스타트업 관련 강의 및 교육을 진행하였다. 스타트업 도우미가 되고 싶은 마음에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