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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벤더플렉스?!, 물류센터에 제조설비가 들어서는 이유

by 엄지용 기자

2017년 12월 27일

물류와 제조의 이유 있는 만남, 한국형 벤더플렉스 1월 시동

물류의 본질은 '신뢰', 합작법인 SGC 탄생의 이유

다품종소량, 3000개의 SKU를 처리한다면 

 

Idea in Brief

물류센터 한 편에 ‘제조설비’를 들여놓겠다는 3PL업체가 등장했다. 어떤 제조설비인지 궁금해서 보니, ‘제습제’를 만드는 공정이라고 한다. 유통과 IT, 제조 등 이종산업의 물류산업 침투가 일반화된 시대, 깊은 고민을 하던 물류의 역습이란 말인가. 비슷한 사례로 아마존이 제조사의 물류센터에 자사의 직원을 파견해 현장작업을 시킨 ‘벤더플렉스(Vendor Flex)’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업체가 거창하게 아마존의 벤더플렉스를 벤치마킹한 것은 아니다. 그저 3PL의 ‘본질’에 집중하다보니 자연히 따라온 결과라고 한다. 대체 이 업체가 말하는 ‘본질’이 무엇이길래.

 

2013년 10월, WSJ 등 외신의 보도로 아마존의 공급망관리 기법 ‘벤더플렉스(Vendor Flex)’가 화제가 됐다. 아마존이 대형 제조 화주사인 P&G의 창고에 직원을 파견해 상품 포장 및 출고 등 풀필먼트 작업을 현장에서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벤더플렉스를 통해 P&G는 물류센터로부터 아마존 물류센터까지의 배송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아마존은 별도의 물류센터 투자 없이 화주사의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보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벤더플렉스는 기업의 기밀유출과 같은 보안 우려를 뛰어넘어 양사의 ‘신뢰’가 만든 기법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최근 아마존의 벤더플렉스와 유사한 방식을 한국에 적용한 신생 3PL업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디아이로지스’다. 이 업체의 방식과 아마존의 벤더플렉스와 차이가 있다면, 제조가 물류를 품은 것이 아닌 물류가 제조를 품은 것이며, 제조업체 물류센터의 공간을 빌린 것이 아닌, 물류업체의 물류센터에 ‘제조설비’를 설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디아이로지스 A동 물류센터(좌측)와 제조설비가 들어갈 예정인 B동 물류센터. B동 물류센터는 설비계획 이전에 ‘홈쇼핑’ 화주를 위한 물류업무 공간으로 활용됐다.

 

디아이로지스는 오는 1월 120평 규모의 B동 물류센터에 제조설비 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생산 예정인 제품은 ‘제습제’ 단일품목으로 계절성이 큰 상품이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 주로 판매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 물류운영을 함께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최소한의 인력을 유지하고, 여름에는 인력을 추가하여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점이 있다면, ‘왜, 물류업체가 갑자기 제조를 시작한다고 하며, 그것도 하필 제습제인가’이다. 그 의문을 함께 풀어보자.

디아이로지스가 제조설비를 통해 생산 예정인 생활공작소의 ‘제습제’

 

평범한 3PL에 숨은 ‘본질’

 

디아이로지스는 2012년 사업을 시작한 3PL업체다. 물류센터 입고부터 택배업체까지의 출고와 재고관리를 대신 해주는 그 3PL 맞다. B2C물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간헐적으로 B2C회사의 B2B업무(물류센터간 입출고, 특정회사로 출고, 국제물류를 위한 수출·포워딩업체로 출고)를 수행하기도 한다. 고객사 중에는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으니 e풀필먼트 사업자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디아이로지스의 월평균 출고량은 3만 건이고, 월매출은 평균 1억 원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11개 고객사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흔히 보이는 중소 3PL업체 맞다.

 

실제 디아이로지스가 ‘제습제 제조설비’를 물류센터에 넣게 된 계기는 아마존의 ‘벤더플렉스’를 벤치마킹한다거나 하는 웅대한 포부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그저 3PL업체의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타난 결과라고 한다. 3PL업체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니 ‘물류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서비스 정신’이라고 한다.

 

디아이로지스가 말하는 물류 운영프로세스란 입고부터 출고까지 아우르는 ‘물류관리’와 그에 수반되는 ‘재고관리’다. 앞서 언급했듯 모든 3PL 업체가 당연히 내세우는 ‘기본’이다. 그러나 기본임에 불구하고 그것이 잘 안 되는 업체가 정말 많다는 게 디아이로지스의 설명이다. 또 하나, 디아이로지스가 말하는 ‘서비스 정신’이란 고객맞춤 서비스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마치 자사 물류를 처리하는 듯한 서비스 마인드라고 한다. 막연하다.

 

물류와 유통의 만남, 그리고 제조까지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고 했다. ‘생활공작소’라는 이름이 나왔다. 생활공작소는 약 2년 전 디아이로지스에 입점한 유통업체다. ‘습기의 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제습제’, ‘여기 저기 막 그냥 쉐이킹 쉐이킹 베이킹소다’, ‘여보, 이거 삶은 거야? 표백제’ 등 조금은 키치(Kitsch)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생활·주방용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이 업체가 만든 ‘제습제’는 온라인 판매율 1위도 기록하는 등 꽤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디아이로지스가 물류센터에 ‘제습제 제조설비’를 설치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디아이로지스는 지난 4월 생활공작소와 합작법인 ‘SGC’를 설립했다. 디아이로지스는 ‘물류’에, 생활공작소는 ‘원자재 소싱’과 ‘유통’이라는 각각 잘하는 영역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배했다. 이 SGC가 탄생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생활공작소의 베스트셀러 ‘제습제’ 공정을 디아이로지스 ‘물류센터’로 내재화하는 것이다.

 

지금껏 OEM을 통해 제조 아웃소싱을 했던 생활공작소와 물류만 하던 디아이로지스 모두에게 ‘제조’는 첫 번째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는 오랜 시장조사와 스터디를 통해 제조공정 내재화에 따른 양사의 이익이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생활공작소는 제조공정 내재화로 ‘안정적인 제품 수급’을 통한 부가적인 이익 창출이 가능하다. 디아이로지스는 물류센터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특히, 같은 공간을 ‘물류대행’으로 활용하는 것에 비해 ‘제조’의 이익률이 3~4배 이상 높을 것이라 추산했다는 게 디아이로지스의 설명이다.

 

박대일 디아이로지스 대표이사는 “객단가가 낮고 온라인 판매 특성상 이익률도 낮은 제품인 ‘제습제’의 이익극대화를 고민하던 중 ‘OEM제조공장부터 물류센터까지의 물류비’라는 비용항목이 눈에 들어왔다”며 “이 물류비만 아껴도 이익률을 크게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물류센터에 제습제 제조공정 설치를 결정하게 된 이유”라 말했다.

 

이유 있는 만남, 결국은 본질

 

물론 디아이로지스와 생활공작소가 처음부터 ‘합작법인’ 설립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두 회사는 화주사와 고객사로 만나 동반성장하며 ‘신뢰’를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 합작법인 설립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디아이로지스 물류센터 내부 전경. 물류센터의 층고는 15m로 높은 편이다.

 

처음 생활공작소가 디아이로지스 물류센터에 입점하던 2년 전, 당시 하루 출고량은 불과 일평균 20~30건에 불과했다. 여타 3PL업체들이 관리의 번거로움과 수익성을 이유로 출고량이 적은 업체들의 물량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디아이로지스는 ‘생활공작소’ 입점을 결정했다. ‘출고량’ 이전에 생활공작소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생활공작소는 빠르게 성장했고, 현시점 출고건수는 하루 평균 1,000건 이상으로 2년 전 대비 50배 이상 늘었다. 물론 출고건수가 늘어난 것은 물류업체가 잘했다기보다는 생활공작소의 상품과 마케팅 역량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라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공작소의 성장과정에서 디아이로지스 또한 물류로써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형성됐다. 이것이 앞서 조금은 막연해보였던 디아이로지스가 강조하는 ‘본질’이자 ‘서비스 정신’이다.

 

디아이로지스는 물류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개선점을 도출하여 생활공작소에 전달했다. 일종의 컨설팅 개념의 서비스인데, 이미 디아이로지스의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생활공작소이기에 부가적인 ‘비용’을 청구하진 않았다고 한다. 한 사례를 꼽아보자면, 생활공작소가 OEM생산하는 ‘핸드워시’의 세정액이 담긴 리필용기가 파손되는 건이 왕왕 발생했다고 한다. 포장 모서리가 각이 져있어 미세한 구멍이 나서 생기는 문제였는데, 디아이로지스는 이를 파악하고 ‘둥근 모서리’의 포장을 만드는 것을 생활공작소에 제안했다. 또 다른 사례로 생활공작소 제품의 ‘펌핑용 헤드’가 배송 과정에 잘 눌려 배송 제품 안의 액체가 새어 나오는 일도 있었다. 디아이로지스는 이에 펌핑용 헤드 포장전에 ‘보강재’를 대는 방식으로 개선사항을 제시했고, 실제 반영됐다.

생활공작소가 판매하는 ‘핸드워시’와 개선된 리필용기. 핸드워시 본체와 함께 세정액이 담긴 리필용기가 포장된다.

 

그러던 중 디아이로지스가 생활공작소와 ‘신뢰’를 형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생활공작소는 유통업체의 특성상 쿠팡, 지마켓, 11번가 등 여러 마켓플레이스에 동시 입점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생활공작소가 입점하고 있는 한 마켓플레이스는 ‘택배비’를 마켓플레이스측에서 정산하고 있었는데, 디아이로지스와 생활공작소 모두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택배비가 ‘이중청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디아이로지스는 이런 사실을 생활공작소보다 먼저 발견했고, 문제를 파악하자마자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정리하여 바로 다음날 생활공작소에 전달해줬다고 한다. 생활공작소는 크게 만족했고, 이를 계기로 1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합작법인이 탄생했다.

 

박 대표는 “평소 물류는 ‘서비스’며, 그렇기에 ‘서비스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한다”며 “단순히 고객이 해달라는 것을 해주고 비용 정산을 하는 것이 서비스가 아니라, 마치 자사의 물류를 처리하는 것처럼 고객의 상품에 애정을 갖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물류가 서비스”라 강조했다.

 

서비스를 만드는 것들

 

디아이로지스가 강조하는 물류 서비스는 또 다른 고객사에게도 이어진다. DIY 뷰티제조 브랜드 ‘에코팩토리(운영사= 에코먼트)’가 그 주인공이다. 에코팩토리는 화장품원료, 비누원료, 베이스오일, 아로마오일을 포함하여 3,000여개의 SKU를 보유한 브랜드다. 고객이 직접 재료를 사서 화장품이나 비누를 만드는 제품 특성상, 한 고객의 주문 포장에 들어가는 제품은 평균 20개가 넘는다. 여기에 각각의 재료에 대한 opp 포장까지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디아이로지스 물류센터에 보관된 에코팩토리의 상품들. ‘리본’과 ‘네이밍카드’와 같은 부자재들도 포장에 포함된다. 이 모든 낱개품목을 시스템과 ‘실물일치’ 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디아이로지스에게도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다.

 

에코팩토리와 같이 SKU가 많은 화주사 역시 관리 효율과 공수 증가로 인한 생산성 하락으로 인해 3PL업체들이 선호하지 않는 화주 유형 중 하나다. 그럼에도 디아이로지스는 에코팩토리 입점을 결정했다. 다품종 소량 출고 제품도 문제없이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디아이로지스가 강조하는 ‘서비스’ 역량이며, 그 과정을 거친 현장인력들은 이제 수백건의 SKU를 보유한 화주사의 물류는 아주 손쉽게 처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아이로지스는 현재 에코팩토리의 물량을 월 4,000~5,000개 가량 출고하고 있다.

포장중인 에코팩토리 제품들. 포장에 들어가는 각 재료들이 모두 완충 포장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택배업체 대리점들이 이따금 유휴공간의 활용을 위해 ‘저단가’로 3PL시장 영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화주들의 고정비용 절감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인데,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다가 기본적인 ‘물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해서 비용을 더 주고서라도 디아이로지스에 입점한 화주들이 많다”고 밝혔다.

 

디아이로지스의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또한 ‘빠른 고객화(Customizing)’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고객사의 상품과 출고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WMS를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사의 니즈에 따른 기능추가 또한 자유롭다는 설명이다. 디아이로지스에 따르면 그야말로 고객사의 숫자만큼의 WMS를 제공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 대표는 “주문서 생성부터 출고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고객의 주문서 관리 프로그램과 WMS를 연동시킨 사례가 있다”며 “아무래도 엑셀 데이터를 WMS로 이관시키고, 발주서를 만들고, 피킹하는 과정을 진행하다면 사람의 실수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최소화하고자 한 조치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고객들이 3PL서비스에 가장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반품 및 파손재고로 인한 손실을 시스템에 반영하지 않아 실재고와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재고관리가 안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바로잡는 것은 결국 잘 짜여진 ‘시스템’과 역량을 갖춘 ‘사람’의 몫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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