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창고 넘은 아마존, 풀필먼트가 커머스의 미래인 이유

by 박찬재

2017년 11월 30일

아마존, 창고, 풀필먼트▲ 아마존 물류센터(자료: Amazon)

 

글.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이사

 

1999년, 32살의 제프 윌크(Jeff Wilke)가 아마존(Amazon) 이사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발표를 한다. 물류센터(Distribution Center)라는 이름을 모두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풀필먼트의 탄생이었다. 대체 그는 아마존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왜 굳이 명칭을 바꾸고자 했던 것일까.

 

최근 국내의 수많은 분야에서 풀필먼트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풀필먼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새로운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풀필먼트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서비스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도대체 풀필먼트란 무엇일까. 풀필먼트 서비스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를 정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생겨난 과정을 통시적으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고(Warehouse)로 시작하여 물류센터를 거쳐, 풀필먼트 센터로 진화한 아마존 물류의 성장과정(<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에서 참조)을 살펴보면 풀필먼트에 관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창고: 현장을 ‘몸으로’ 배우는 단계

 

1995년 봄, 시애틀에 있는 6평 남짓의 지하 공간에서 아마존의 공식 창고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막 서비스 이름을 정하고 웹사이트를 개발하기 시작하던 아마존의 창고에 물류담당 직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보니 웹사이트를 오픈하고 폭발적인 속도로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배송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95년 당시 온라인으로 도서를 구매하는 것이 고객에게 낯선 경험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늦은 배송’은 온라인 쇼핑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와 몇몇 임직원들은 개발이나 판매 등의 일이 끝나면 밤마다 지하실로 내려가 고객이 주문한 책을 포장하고, 다음날 포장된 상자를 택배회사나 우체국을 통해 배송했다.

 

포장작업은 늦은 새벽까지도 계속되었다. 작업자들은 늘 바닥에 쪼그리고 앉거나 허리를 구부려 장시간 포장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새롭게 파트타임으로 합류한 물류담당 직원은 이를 보다 못해 한 마디 한다. “여기는 대체 왜 작업 테이블을 안 쓰는 거죠?” 이커머스의 성장을 무려 20년 전부터 예견했던 제프 베조스였지만, 그런 그도 창고에서는 작업 테이블 놓는 것조차 ‘몸으로’ 직접 배워야 했다.

 

물류 현장에서 수많은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으레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까? 누군가 미리 알려주거나 교과서가 있다면 좋을 텐데.’ 매일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게 되는 이커머스 물류에서 이러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때때로 이는 자괴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존 창고의 시작을 살펴보면, 그러한 고민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커머스 물류는 판매형태나 제품형태에 따라 그 운영방식이 무한히 다양해지기 때문에 표준화가 어렵고, 교과서나 매뉴얼도 물론 없다. 따라서 ‘창고’의 단계에서는 모든 물류 프로세스를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창고의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존, 제프베조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자료: Amazon)

 

물류센터: 유통공룡의 방식을 도입하다

 

1998년, 아마존은 닷컴열풍 속에서 많은 투자금을 확보했고, 유통공룡 월마트(Walmart)의 중역들을 왕성하게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직원과 새로 건너 온 사람들 간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마존 직원은 주로 20~30대였고 무엇이든 문제제기를 하며 ‘허세’가 심했다. 반면 월마트 중역들은 40~50대로 기존 직원보다 나이나 경력이 훨씬 많았으며 물류·유통업계에 잔뼈가 굵었으므로 본인들이 하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조직문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제프 베조스는 월마트 중역을 영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이미 물류의 중요성을 내다보았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월마트 수준의 물류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월마트의 유통 부사장이었던 지미 라이트가 아마존에 합류하면서 물류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된다. 아마존의 창고가 물류센터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 시점이었다. 물류센터라는 단어가 월마트에서 쓰던 사내 용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프라인 위주의 월마트의 물류 운영 방식과 온라인 위주의 아마존의 물류 운영 방식이 너무도 상이하여, 월마트 출신의 전문성이 아마존에서 잘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월마트에서는 물류센터가 하루에 한 번, 정해진 물량의 제품을 컨테이너로 출하하면 됐기 때문에 예상치를 산출하고 계획하는 것이 손쉬웠다. 하지만 B2C 물류를 소화하는 아마존의 물류센터에서는 설계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마트 출신들은 대형 유통시설을 짓는 데는 세계 최고였다. 이에 아마존은 순식간에 대형 물류센터를 다섯 개까지 늘렸으며, 각 물류센터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면서 양적인 수용능력(Capability)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이 지극히 월마트의 방식이라는 문제는 있었지만.

 

필자의 회사가 450평 규모의 풀필먼트 센터(품고 1센터)를 설계할 당시였다. 수천만 원 상당의 물류 컨설팅을 받으면서 물류센터 설계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2개월간 설계했던 로케이션을 센터 이전 후 단 하루 만에 바꿔야 했다. 회전율이 높은 제품 중 일부를 너무 아래 칸에 배치함으로써 작업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성 물류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은 컨설턴트라도 현장의 노하우는 현장에서 배워야 하며, 그 중에서도 이커머스 물류는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풀필먼트: 노하우와 기술의 집합체

 

지미의 월마트식 물류센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가령 이커머스 물류에서는 배치(Batch: 일괄처리되는 물품들) 피킹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문별 처리시간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미가 도입한 월마트 방식의 자동화기계는 모든 피커의 작업이 끝나야만 다른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즉 200명의 피커 중 199명이 10분 안에 작업을 끝내고 단 1명만 작업이 지체되더라도, 199명이 나머지 한 명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당시 아마존 물류센터는 기저귀 1,000개를 한꺼번에 출고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개별 주문건을 처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제프 베조스는 기성 물류 베테랑이 이 사업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미 라이트 대신 MIT 공대 출신의 SCM 전문가 ‘제프 윌크’를 영입했다. 새로 부임한 윌크는 아마존 물류센터에 특별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주문을 예측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몇 개씩 살지 예측할 수 없었고, 합포장되는 제품의 조합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공학도였던 윌크는 아마존의 물류센터를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소매업이 아니라 ‘공장 물리학’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고, ‘고객의 주문을 이행한다(Fulfill)’는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물류센터의 이름을 풀필먼트 센터로 바꾸기에 이른다.

 

제프 윌크는 이후 기존 소매 유통업체의 물류 운영 공식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과감하게 자동화설비와 소프트웨어를 순차적으로 추방하기로 경정한다. 기존의 조명 유도 피킹 장치나 분류 기계 등은 빼고, 덜 자동화된 방식으로 센터를 전면 재설계하였으며, 원래 있던 자동화기계의 빈자리를 자체 개발한 솔루션으로 채워갔다. 그리고 주문별로 가장 빠르게 피킹 및 패킹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무한한 시나리오를 생성해, 가장 빠르게 상품을 배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전국 단위의 재고현황과 고객의 위치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가장 저렴한 배송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풀필먼트 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효과는 대단했다. 풀필먼트의 배송시간은 줄어들고 단위당 비용은 내려간 것이다. 윌크가 합류할 때만 해도, 주문 후 선적까지 3일이 소요됐는데, 그가 합류하고 1년이 지난 후에는 해당 시간이 4시간으로 단축됐다. 이는 센터에서의 고찰과 운영 노하우를 토대로 솔루션을 개발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물류를 거의 완벽하게 컨트롤하게 되자 고객에게 배송 예정일을 약속할 수 있게 됐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존은 익일배송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을 론칭했다. 물류에 쏟은 그간의 노력과 투자 덕분이었다. 이렇듯 고객에게 신뢰와 편의를 제공하자 아마존은 바로 이베이 등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물류가 서비스의 개념으로, 이커머스 업체의 경쟁력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마존은 FBA(Fulfillment by Amazon)를 통해 제3자에 대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피킹 자동화기계를 개발한 키바시스템즈(KIVA Systems)를 인수하는 등 지속적으로 물류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거둬들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마존 물류센터, 풀필먼트▲ 아마존 풀필먼트센터의 피킹 작업 모습(자료: Amazon)

 

풀필먼트가 미래산업인 이유

 

지금까지 소개한 아마존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첫 번째, 이커머스에서 물류를 선점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서비스의 품질, 그리고 경쟁우위와 직결된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라스트마일(Last-mile) 분야에서 ‘로켓배송’에 투자한 쿠팡이나 ‘부릉(메쉬코리아)’에 투자한 네이버 등, 물류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커머스 서비스의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라스트마일 배송 전 단계인 ‘창고’에서의 혁신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 풀필먼트는 기존 유통업체나 제조업체가 운영하던 물류센터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마존이 수천억 원의 투자손실을 통해 배운 것은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의 기존 소매유통 물류 방식으로는 이커머스 특유의 비정형성과 수많은 SKU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커머스에 맞는 풀필먼트 센터 운영과 알고리즘, 그리고 그것이 연동된 자체 솔루션을 가지고 있어야만 진정한 풀필먼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 진정한 의미의 완성된 풀필먼트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이다.

 

세 번째, 현재 국내에 ‘완성된’ 풀필먼트 서비스가 없는 상태에서 이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아마존이 겪은 혼돈을 수많은 제조/유통업체가 겪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많은 셀러의 성장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물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온라인 셀러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조금 생소하고 멀리 느껴지는 풀필먼트가 미래 필수 산업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희망적인 점은 있다. 필자가 풀필먼트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15년 초만 하더라도 풀필먼트는 정말 희소한 개념이었는데(전통적인 창고업으로만 받아들여졌다.), 최근에 와서는 풀필먼트가 단순 창고업과는 어딘가 다른 서비스로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풀필먼트 서비스가 완성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시도와 노력이 더해지길 기대해 본다.



박찬재

성균관대학교에서 무역 및 외국어를 전공하였으며, 2012년부터 두손컴퍼니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5년 풀필먼트 서비스 '품고(poomgo)'를 런칭하여, 지금까지 100곳 이상의 이커머스 셀러들, 15,000종 이상의 제품들에 대한 물류를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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